www.smartincome.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국민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의 부를 위해 일제의 앞잡이가 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잡이들은 당시 부를 축적해 지금까지도 부유하게 잘 살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는 남겨진 재산도, 지위도 없는 것이 현실이죠.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자금을 지원한 것만으로도 발각되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목숨까지 위험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헌신적인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죠.


개인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참 좋아하는데요. 아래의 대기업들도 독립운동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가를 도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나라의 안위를 위해 용감히 맞선 분들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보겠습니다.


1. LG: 흔쾌히 독립자금을 건네다



출처:(좌) 시사저널

lg그룹의 구인회 창업회장은 1942년 구인 상회를 운영하였는데요.  그해 7월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가 일제에 지명수배 중이었던 당시 만주로 돌아가기 전 친척을 통해 알고 있던 구인회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 그는"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 나라를 돕는 일이다"라며 흔쾌히 1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그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구재서는 1930년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김구에게 5천 원을 지원한 사실이 있습니다.


출처: (좌)국제신문

LG그룹은 구회장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2015년 현충 시설 개보수 사업을 하였고, 지금까지 임시정부 청사, 윤동길 기념관 등 7곳의 독립운동 시설을 개보수 하였는데요. 2016년에는 독립유공자 후손과 국내외 참전용사를 돕고자 14며의 자택을 수리하기도 했습니다.


2. GS: 독립운동자금 마련과, 인재 양성



출처: (좌)우리경제신문

GS 그룹 허창수 회장의 부친인 허준은 1914년 백산상회 공동 설립자입니다.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의 민족기업으로 겉으로 일반 상회지만 독립자금 마련을 목적에 둔 곳이었죠. 이곳은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 60% 지원하였고, 독립운동가의 단체 연락망 역할도 하는 등 다방면으로 독립운동가를 도왔습니다. 허준의 아들 허만정도 자금뿐만 아니라 독립 인재 양생을 위해 일신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허준의 아버지인 허만장도 꾸준하게 독립운동을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죠. 요즘 GS25편의점에 독립운동가 도시락이 나왔는데요. GS그룹의 역사를 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3. 교보 생명: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가



출처:(좌)디자인파크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는 19살에 중국으로 건너가 1941년 곡물회사인 '북일 공사'를 설립했습니다. 그곳에서 이육사를 만나며 독립자금 보태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와 4명의 형들도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다 보니 일제에 눈에 띄어 늘 쫓겨 다녔다고 하죠. 현재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는 바로 이 교보생명의 계열사입니다.


4. 동화약품: 까스활명수를 팔아 독립을 지원하다



출처: (좌)동아일보 / (우)동아약품

까스활명수 개발자 민영호 선생의 아들 민강 사장은 1920년대 까스활명수를 팔아 번 돈으로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라는 민족정신이 깃든 기업이라고 하는데요. 당시 동화약품의 본사 '서울 연통부'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연락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임시정부에 발송한 비밀문서 목판을 새기던 중 발각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르고 끝내 숨을 거두셨죠. 그의 아들 윤광열도 독립운동에 참여를 했는데요. 동화약품의 5대 사장인 윤창식은 경제자립을 목표로 '조선산직장려계', '신간회'등을 지원하는 등 그의 정신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5. 유한양행: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귀국하다



출처: (좌)메디게이트뉴스 / (우) 위키리크스 한국

'좋은 느낌'과 '화이트'생리대로 유명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 마쳤는데요. 그는 14살 때부터 독립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는데요.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안전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도 있었지만 독립 자금 마련을 위해 귀국하여 1926년 조선 최초 제약회사 유한양행 설립하였습니다. 독립을 위한 경제적 자립을 목적에 둔 행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