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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없어서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 놀란 파업 순위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가진다'라고 명문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근로 계약서상 정말 '을'에 해당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죠. 파업 역시 이 조항에서 말하는 '단체 행동권'에 속하므로, 당당히 누릴 수 있는 국민의 권리입니다. 


헌법도 좋고 법의 취지도 좋은데, 한 업계의 근로자들이 파업을 선언하면 국민,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해진 기한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지 못하거나, 시간과 돈을 들여 준비한 여행을 못 가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고객의 불편함 자체가 파업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성화가 클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측과 빨리 합의를 보고 싶을 테니까요. 


출처: TV 조선 / 경향신문

그런데 파업이 아무런 불편함도 유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고객들이 파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거나, 오히려 파업하니 생활하기가 한결 더 편해졌다고 좋아한다면? 최근 큰맘 먹고 한 파업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적었던 경우가 여러 번 있었는데요. 그 이유도 모두 제각각이죠. 오늘은 '별다른 불편을 유발하지 않은 파업들'에는 뭐가 있는지, 순위를 매겨 알아볼까 합니다. 


1위-운전할 맛 난다, 택시 파업


지난 12월 20일, 택시기사들은 본격적인 단체 행동에 나섰습니다. 카카오 카풀 서비스 론칭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파업과 집회를 결정한 것이죠. 개인면허 택시1만여 대, 법인 면허 택시 6천여 대 등 총 1만 6천여 대 정도가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안 그래도 택시 수요가 많은 연말인데 파업까지 했으니불편함이 아예 없진 않았겠죠. 택시나 지하철로 사람이 몰려 혼란을 빚기도 하고, 귀갓길에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오히려 '택시가 파업을 하니 너무 좋다'라는 반응도 꽤나 나왔죠. 


출처: 경북뉴스 / 국제신문

운전자들 사이에서 택시는 '도로 위의 무법자'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손님을 계속해서 태우고 내려줘야 하는 택시의 특성상 끼어들기가 잦을 수밖에 없죠. 때로는 꼭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거칠게 운전하거나, 차선을 바꾸려고 방향지시등을 켤라 치면 뒤에서 전력을 다해 달려오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이번 파업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기는커녕 '신난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많았던 이유인데요. 택시가 거리에 나오지 않으니 교통체증이 줄고, 운전하기가 한결 수월했다는 것이죠.


출처: 뉴스 토마토

뚜벅이 국민들의 불편을 줄이는 데는 각 지자체들의 노력이 한몫했습니다. 택시 파업으로 출·퇴근길 혼잡이 예상되자 승객 비상수송대책 마련에 나섰죠.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늘리고 배차간격을 좁혀 승객 불편을 최소화했습니다. 


2위-하는 줄도 몰랐네, 국민은행 파업


출처: 서울경제

지난 8일, 국민은행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국민은행 집계에 따르면 1만 7천 명의 직원 중 5천5백 명 정도가 파업에 참여했다는데요. 전 직원의 약 30%에 달하는 숫자가 근무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은행은 평소에 방문해도 항상 대기 시간이 기니까 말이에요. 

의외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파업을 하는 줄도 몰랐다' 거나 '평소보다 한산했다'는 반응을 보인 국민들도 있었는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우선  파업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은 전국 1058개 점포를 모두 열었습니다. 게다가 파업을 알고 있던 고객들은 웬만한 일들을 온라인 거래로 해결했고, 일부 지점의 인력 공백은 본사에서 파견한 직원들이 채웠죠. 


파업 당일 대부분의 국민은행 지점에서는 대고객 사과문을 내걸었습니다. 파업으로 인해 업무처리가 지연될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죠. <이뉴스 투데이>의 취재에 따르면 국민은행 광화문 지점은 대기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과자, 귤, 요구르트 등의 다과까지 비치했다고 하네요. 약간 긴장한 모습의 직원들도 평소보다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애썼답니다.


출처: YTN

사과도 열심히 했고, 업무 공백으로 인한 불편함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은행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합니다. 국민은행 직원의 평균 연봉이 '9천 1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저렇게 많은 돈을 받으면서도 근무환경이 나쁘다고 주장하며 고객을 볼모로 잡을 수 있냐'라는 게 국민은행 파업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요지입니다. 국민감정의 악화와 고객 이탈을 막으려면 2차 파업까지는 가면 안 된다는 노사 간 공감대가 형성되어, 지금은 점차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하네요.


기본을 지킨 대응, 대한항공

출처: 스카이 데일리

이번엔 좀 된 이야기입니다. 2016년 12월의 일이죠.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29%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는데요. 전체 조종사 2천 5백여 명 중 170여 명이 참여했죠. 다른 직원도 아니고 조종사가 근무를 하지 않으면 항공사의 기본 업무인 여객기 운항이 불가능해지고, 고객들의 불편과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은데요.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한 사람,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비행기를 예약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파업 역시 큰 소용돌이 없이 무난히 지나갑니다. 노조 파업 첫날인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간 운행하는 국내선·국제선 총 2,034편 중 일평균 각각 2.4편이 감편되었는데요. 대한항공 측은 행정직을 맡고 있던 조종사를 긴급 투입하고 다른 교통 편으로 대체가 가능한 노선 위주로 결항하는 등 파업으로 인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죠. 물론 비행 스케줄이 취소된 고객에게는 추가 비용 없이 예약을 변경해 주거나 위약금 없이 전액 환불을 해 주었습니다. 


현재 항공운수사업은 '필수유지업무'에 포함되어 파업권에 제한을 받고 있는데요. 이에 작년여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협회 등 항공업계 노동자들은  필수유지업무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습니다. 필수유지업무는'필수공익사업의 업무 중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업무'입니다. 


항공업계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더라도  많은 국내외 항공사가 비슷한 노선을 운행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운수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국민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죠. 필수유지업무 때문에 파업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이에 항공사 재벌들의 갑질만 늘어난다고 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