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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 해외로 간 '국민 소주'가 

초대박 터진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전에 비하면 한국의 술 문화도 많이 다양해졌습니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신대륙 와인, 유럽 각지와 국내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수제 맥주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났죠. 그래서 '알코올 맛' 때문에 소주를 마시지 못하던 사람들도 요즘은 어느 정도 음주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출처: KBS / instagram @sojay_lee

그래도 한국인의 기본 술은 역시 소주겠죠. 회식자리를 가도, 가족 모임에 참석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니까요. 가격이 저렴한 데다 맵고 짠 한국 음식과 잘 어울려, 와인이나 맥주보다 소주를 선호하는 분들도 아직 많습니다. 보드카나 진 보다는 도수가 낮아 희석하지 않고도 마실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런 소주의 매력을 우리만 알고 있으면 조금 아쉬울 텐데요. 최근 참이슬을 비롯한 다양한 소주들이 해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한국인들만 마시는 술인 줄 알았던 소주는 어떻게 바다 건너 외국까지 진출한 걸까요?



해외 진출의 첫걸음


출처: 한경닷컴

진로 소주가 처음 대한민국 밖으로 나간 것은 1968년의 일입니다. 당시 베트남으로 파병 갔던 군인을 위해 처음 수출을 시작했죠. 뒤이어 72년에는 해외 영업부를 신설해 인삼주와 소주 등을 본격적으로 수출할 기반을 닦습니다. 이때 하이트 진로는 우선 일본 진출을 목표로 삼는데요.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관리가 용이하고, 일본에도 역시 쇼추(しょうちゅう)라 불리는 소주가 있으니 맛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죠.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출처: allabout-japan / favy

일본인들이 마시는 쇼추는 위스키와 도수가 비슷한 독주입니다. 한국인들처럼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보다는 탄산수나 레몬수 등을 섞어 칵테일로 마시는 게 일반적이고, 그래서 일본 소주 원액에는 단 맛이 없습니다. 첨가물로 어느 정도 단 맛을 집어넣은 한국 소주는 일본인들의 음주 방식에 잘 맞지 않았죠.  게다가 당시 한국은 국민 대부분이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만드는 소주가 품질이 좋을 리 없다'는 선입견 역시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의 실패를 겪은 하이트 진로는 수출용 진로 소주를 과감하게 리뉴얼합니다. 알코올 농도는 국내 소주와 같게하되 칵테일로 만드는 데 적합하도록 당분은 없는 소주를 만들었죠. 제품의 용량도 달리했습니다. 위스키나 일본 소주처럼 700ml짜리 큰 병을 만들고, 라벨에는 '진로'의 한자 표기를 추가했죠. 고급술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가격도 오히려 높였습니다. 그러자 진로 소주는 일본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소주의 해외 진출, 그것도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진출에서의 첫 성공이었던 것이죠. 


동남아시아의 소주 한류


하이트 진로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외 현지인 시장을 보다 본격적으로 공략합니다. 일본,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에도 법인을 설립하죠. 이렇게 시장을 확대한 결과는 매출액 증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년 하이트 진로는 약 940억 원 상당의 주류를 수출했는데요. 이는 20년 전에 비하면 3배가량 증가한 수치입니다. 


출처: tvN

이렇게 우리 소주가 해외에서 각광을 받는 데에는 연예·문화계 한류의 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소주 마시는 장면이 안 나오는 한국 드라마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특히 포장마차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우동 한 그릇 앞에 두고 입김을 내뿜으며 소주잔을 부딪히는 모습은 외국인 한류 팬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고 합니다. 


출처: 머니투데이

눈에 띄는 판매량 증가를 보인 것은 역시 한류 바람이 강한 동남아시아 지역입니다. 2017년 동남아 지역 소주 판매량은 880만 달러 규모에 이르렀는데요. 이는 한화 약 98억 5천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2015년의 490만 달러에서 2년 새 180%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한류 때문에 장사가 잘 된다고 가만히 앉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어선 안되겠죠. 하이트 진로에서도 소주 수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 진로 포차를 여는가 하면, 필리핀에서는 할로윈, 크리스마스 파티를 개최했죠. 면세점 입점에도 적극적입니다. 홍콩 쳅랍콕, 싱가포르 창이, 인도네시아 발리, 미얀마 양곤 등의 공항 면세점에 자사 소주 브랜드를 가져다 놓으며 본국에서의 소주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맛없는 맥주의 오명을 벗고


출처: 중앙일보

2012년, 이코노미스트지 기자인 대니얼 튜더는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씁니다. 이 기사는 한구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나도 한국 맥주가 너무 싱겁고 맛없다고 생각했다', '북한 맥주보다 맛이 없다니 자존심 상한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죠. 


출처: Weekly 공감

독일은 100% 맥아만 사용해야 맥주라고 부를 수 있고, 일본에서는 66.7% 이상의 맥아 비율을 유지해야 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10%만 맥아를 넣어도 맥주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문제이니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반면 한국 기업에서 내놓는 맥주는 대부분 하면 발효를 거치는 라거인데다, 목 넘김을 강조하다 보니 가볍게 만들 수밖에 없으며, 소주와 혼합해 마시는 폭탄주 문화에는 오히려 어울리는 맛이라며 한국 맥주를 변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출처: 중앙일보

어쨌거나 하이트, 카스로 대변되는 한국 맥주가 싱겁고 가벼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한국 맥주가 해외시장에서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도 아니고, 한류 열풍이 거센 동남아시아도 아닌 맥주 시장의 본거지,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니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데요. 


출처: 밥상머리 뉴스

사실 한국 맥주가 유럽에서 사랑받는 데에는 한식의 전파가 큰 몫을 했습니다. 김치나 장류 등 발효식품의 유익성이 알려지면서 유럽에서 한식=건강식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죠. 따로 챙겨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한식에는 채소가 풍부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에는 교민들만 드나들던 한국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는 유럽 현지인들도 늘어난 겁니다.


이에 따라 한국 식당에서 판매하는 한국 맥주의 매출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2017년 하이트 진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약 22만 상자의 맥주를 판매했다는데요. 이는 2016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증류식 소주의 진출도 기대


출처: 조선일보

우리가 보통 식당에 가서 주문해 마시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입니다. 85% 이상의 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조미를 하는 과정을 거치죠. 희석식 소주도 증류 과정을 거치기는 합니다. 연속증류기를 이용해 알코올에서 발생하는 불순물들을 걸러내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재료가 가지고 있던 맛이나 풍미도 사라집니다. 어느 회사의 희석식 소주를 마셔도 맛이 비슷하고, 소주의 첫 느낌이 '강렬한 알코올 맛' 인 것도 이 때문이죠.  


증류식 소주는 일반적으로 단식 증류기를 사용하며, 원료의 풍미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주재료가 쌀이냐 보리냐, 고구마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죠. 보통 알코올 도수도 희석식 소주보다 높게 출시되고, 가격도 비싼 편입니다. 


출처: 식품외식경제

최근에는 무작정 취하기보다는 술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소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증류식 소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요. 광주요 그룹이 내놓은 '화요', 하이트 진로의 '일품진로', 롯데주류의 '대장부' 등이 기업에서 내놓은 증류식 소주에 속합니다. 명인들이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증류식 소주는 높은 가격 때문에 대중의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기업에서 출시하는 증류식 소주는 합리적인 가격과 균형 잡힌 맛으로 '가성비' 증류주로서 사랑받고 있죠.


출처: 조선비즈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친근한 희석식 소주가 해외에서 잘 해내고 있다니, 맛과 향이 풍부한 증류식 소주도 사랑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데요. 물론 국내 대표 주류기업들은 증류식 소주의 세계화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국내 증류식 소주 선발 주자인 '화요'는 최근 하와이에서 한식과의 페어링 행사를 열었습니다. 술과 음식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고, 화요의 태생 자체가 우리 음식 세계화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페어링 행사에 항상 힘을 쓰고 있다네요. 


롯데주류 역시 2017년부터 자사의 증류식 소주 '대장부'를 미국과 캐나다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하이트 진로도 자사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해외 면세점 매장에 '일품진로'를 내놓으며 전 세계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고노력 중이라는데요. 희석식 소주뿐 아니라 우리 술 모두가  와인이나 사케, 위스키에 뒤지지 않는 명주로 대접받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