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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 산업이 경영하는 소규모 백화점

대형 백화점 공세 속에서도 27년간 살아남아

이수역 1분 거리의 유리한 입지

부당 해고, 상품권 강매 등 최근 블랙 기업 이슈


여러분이 가장 즐겨 가는 백화점은 어디인가요? 신세계, 현대, 롯데 백화점을 애용하거나  수도권·지방 곳곳에까지 많은 점포를 가진 NC 백화점에 자주 들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들의 특징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전국구 백화점이라는 건데요. 


이제 특정 동네에만 있는 작은 백화점을 찾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었죠. 그런데 수많은 지역 백화점들이 쓰러져 나가는 와중에도 서울 한복판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소규모 백화점이 하나 있긴 합니다. 사당동에 위치한 태평 백화점이 그 주인공이죠. 태평 백화점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결과 함께 최근 태평 백화점을 둘러싼 이슈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기업 백화점 공세에도 살아남은 소규모 지역 백화점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이수역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태평 백화점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92년 12월의 일입니다. 운영 기업은 경유 산업이며, 대표직은 오픈 당시부터 지금까지 오의용 대표이사가 맡고 있죠.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는 백화점 쇼핑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지상 6층에는 수영장이, 지상 7층과 8층에는 각각 헬스장과 골프장이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스포츠 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주 일반적인 일이었죠. 


태평 백화점은 현재 서울 시내에 남은 몇 안 되는 소규모 지역 백화점입니다. 90년대까지 각 지역에 분포했던 소규모 백화점들은 2천 년대 들어 대기업 백화점들이 지점 수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밀려나버렸는데요.


한때는 대구에서 동아백화점을 운영하던 화성산업이 서울에 쁘렝땅 백화점을 여는 '역주행'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뚜렷한 차별점 없이 초대형 백화점 브랜드와 경쟁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죠. 결국 쁘렝땅 백화점은 2010년 이랜드 리테일에 매각되었고, 진로 그룹 역시 아크리스·진로백화점을 열었다 실패의 쓴맛을 본 바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에서 도전한 백화점 사업도 번번이 좌절되는 가운데, 딱 백화점 하나만 가진 유통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이 살아남기는 어려웠습니다. 대기업 백화점 지점 수가 제한된 지방이라면 몰라도, 서울 땅에서 태평 백화점이 여전히 영업 중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죠.



◎ 사당·방배 상권이 맞물리는 입지


항간에는 신세계가 태평 백화점을 인수하려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는 소문까지 들려오는데요. 그렇다면 태평 백화점은 어떻게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걸까요?  우선 지리적 이점을 꼽아볼 수 있습니다. 태평 백화점 부지는 동작구 사당동 136-1번지로, 제곱미터당 공시지가가 2,332만 원에 달하는 땅이죠. 



사당동, 방배동 상권이 맞물리는 이수역에 위치한 데다 반포동의 신세계 백화점까지는 대중교통으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신세계에만 있는 브랜드·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또 쇼핑을 급히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수역 근처 주민들은 자연스레 태평 백화점으로 향하게 되는 겁니다. 또한 사당역 인근 홈플러스 등 주변 대형마트까지도 어느정도 거리가 있어 장을 보러 들르는 고객들도 많죠. 


다른 백화점에 싼 단가로 물건을 제공하고, 70~80% 할인 행사도 자주 엽니다. 신세계 백화점과 비교해 애초에 저렴하고 실용적인 브랜드들 위주로 입점해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죠. 


하지만 이런 이점은 태평 백화점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외양과 시설을 세련되게 가꾸지 않아도, 특별히 고객층을 넓히려 열심히 마케팅하지 않아도 찾아올 손님은 찾아왔으니까요. 실제로 태평 백화점의 마케팅은 사당동, 방배동, 남현동 주민들에 한정되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블랙 기업 이슈 휘말려


발전이 느리다고는 하지만, 대기업 백화점들의 공세 속에서 27년 동안이나 한자리를 지켜온 점에서 태평 백화점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죠.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태평 백화점의 부당한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올 2월 <한국 섬유 신문>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태평 백화점은 입점 업체들에 30만 원에서 100만 원 상당의 태평 백화점 상품권, 선물 세트 등을 강매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관행은 매년 명절마다 이어져왔죠. 


전체 직원의 반에 가까운 이들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으며, 외상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매장 매니저와 직원 등을 해고하도록 브랜드에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폭로도 있었죠. 백화점은 브랜드 직원 해고에 아무런 권한도 없는데,  "해고 안 하면 매장 철수 공문을 띄우겠다", "마진을 올리겠다"는 식으로 압박했다는 겁니다. 


안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품을 적재할 창고가 없다는 이유로 비상구 쪽 통로와 방화구역, 화장실 앞과 엘리베이터 주변, 심지어 화재의 위험이 큰 흡연실에까지 박스를 쌓아 두었죠. 소방 점검 고지가 나왔을 때만 슬쩍 상품 박스를 치웠다가 끝나고 나면 다시 물건을 적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지리적 이점이나 집중된 타기팅 덕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비용을 축소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요.


다행히 보도 이후 이런 관행은 일부 개선되었습니다. 더 이상 흡연실에 담배꽁초와 상품 박스가 함께 두는 일은 없으며, 상품권 강매를 위해 명절마다 돌리던 공문 역시 올  추석에는 발송하지 않았죠. 하지만 근무환경 부분에서는 여전히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 현실인데요. 지금껏 지켜온 서울 시내 소규모 백화점의 명맥을 이어가려면 직원과 입점 브랜드 모두에게 공정한 방식으로 경영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빨리 찾아야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