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3인조 발라드 그룹 씨야는 2000년대 중반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입니다.
‘여인의 향기’, ‘그 놈 목소리’, ‘여성시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해내며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2009년 소속사와 계약 분쟁을 겪게 되었는데요. 이는 ‘씨야 분쟁’이라 불리며 연예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죠.
당시 소속사와 가수의 계속되는 주장 차이는 법정 분쟁까지 가게 되었고, 이는 결국 인기 멤버였던 남규리의 탈퇴로 이어졌습니다. ‘비주얼 보컬’ 남규리는 씨야 탈퇴 후 가수가 아닌 배우로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연기자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 그녀는 이제는 가수보다 배우로 더 유명하죠. 지금의 성공까지 다사다난했던 그녀, 남규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남규리, 어려웠던 생활
본명이 남미정인 남규리는 1985년생으로 올해 34세입니다. 그녀는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나 어렸을 적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집이 어려워져 친가가 있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이후 당곡 고등학교를 거쳐 명지전문대학교 실용음악과에 들어갔으나 결석으로 인해 제적당했죠. 이에 데뷔 후 2009년 경희대학교 연극 영화학과에 도전해 합격하였고, 나이 어린 연예계 후배들과 함께 동기가 되었습니다.
3인조 걸그룹 씨야로 데뷔
그녀는 2006년 1집 앨범 'The First Mind'를 발매하며 3인조 걸그룹 씨야의 리드보컬로 데뷔하였습니다. 당시 코어콘텐츠 미디어 소속이던 그녀는 데뷔 초 송혜교 닮은 외모로 주목받았으며, 강민경과 함께 소속사의 비주얼을 책임지는 멤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독보적인 외모로 높은 인기를 얻게 된 그녀는 타 멤버들보다 TV 출연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요.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X 맨을 찾아라'에 자주 출연하며 얼굴을 알려나갔습니다. 이에 그녀가 프로그램에서 춘 이정현의 '줄래' 댄스는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하고, 같이 출연했던 토니 안과는 열애설이 터지는 등 대중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죠.
그렇지만 고난은 데뷔 4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계약 기간 중 소속사가 매각되어 복잡한 상황이 된 것인데요. 이로 인해 그녀는 소속사와 법정 다툼까지 가는 등 문제가 불거져 한동안 연예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2009년 8월 소속사 측에서는 남규리가 복귀한다고 발표하였으나, 그녀는 도저히 씨야로 활동할 수 없다고 부정하며 결국 탈퇴했는데요. 이후 2010년 1월 마침내 전 소속사와 계약 종결에 합의하고 소속사를 옮기면서 사건이 종결되었죠.
소속사 이적 후 연기에 전념
2010년 소속사 이전과 함께 씨야를 떠났던 그녀는 연기자로의 전향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미 2008년 영화 '고사 : 피의 중간고사'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던 그녀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인 '인생은 아름다워' 막내딸 역할도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2010년 SBS 연기 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죠.
이후 출연한 드라마 '49일'에서는 영혼인 신지현 역을 맡았는데요. 1-2화 당시 연기 실력에 지적이 많았지만 점차 개선되어 그 이후로는 거의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습니다. 이외에도 드라마 '해운대 연인들', '무정 도시', '붉은 달 푸른 해' 등과 영화 '데자뷰', '질투의 역사'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해명해도 계속 확산되는 렌즈 루머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새로운 시련은 바로 루머였습니다. 그녀가 배우로 각종 드라마와 TV에 출연하면서부터 '서클렌즈를 애용한다'라는 루머가 끊임없이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인데요. 기존 무대나 예능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연기 모습에서는 눈이 감정 연기를 표현하는 일부분으로 중요시되기에 더 이목을 끌게 된 것이죠.
루머가 계속해서 확산되자 남규리는 원래 눈동자가 커서 그런 오해를 받는다고 해명하며 근접 사진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소속사와 드라마 관계자들도 같은 증언을 하며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는데요. 일부 대중들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계속해서 루머를 양산해나갔습니다.
그녀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불가피하게 가수를 포기하게 되었음에도 좌절하지 않았는데요. 배우에 도전한 이후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걷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여러 논란을 잠식시키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기자 전업 이후부터 확산된 이 루머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