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많은 청춘들을 위로했었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지금 당장의 아픔이 나중에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데요. 2011년, 2012년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제목의 글이 2030 베스트셀러였다면 최근 들어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굳이 애쓰지 않고 편안한 삶을 지향하는 책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학 졸업장이 더는 취업 보증서가 되지 않은지 오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가뜩이나 얼어붙은 고용시장을 한 층 더 얼어붙게 만들면서 청년들의 시름은 하루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제2의 IMF가 닥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인 구직 상황을 맞닥뜨린 청년들의 현주소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3년 넘게 취업 시도조차 하지 않은 청년들이 올해에만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통계청이 지난 14일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5월 기준 3년 이상 취업을 못한 청년(15세~29세)은 27만 8천 명으로 집계됐는데요. 이 가운데 취업 준비, 직업교육 등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낸 이는 9만 6천 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을 뜻하는 ‘니트족’이 1년 새 36% 증가한 것인데요.
재작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27세 박모 씨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연이은 서류 탈락에 지쳐 올해부터 구직활동을 관뒀습니다. 박 씨는 “올해 3월쯤 50번째 서류 탈락 통보를 받고 채용 공고 애플리케이션도 핸드폰에서 삭제해버렸다”라며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면접 한 번 보기가 이렇게 어려우니 의욕이 점점 사라진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박 씨는 코로나19 상황이 지금보다 잠잠해져 고용시장이 괜찮아질 때까지 쉬어갈 작정이라는데요.
박 씨처럼 한 창 일할 나이의 청년층이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경제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에서 부를 창출해야 하는 청년층의 계속된 이탈은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인데요.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017년 청년 니트족의 취업 기회 손실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연간 50조 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20대 청년층이 구직을 단념하게 된 주요한 원인으로는 코로나19이후 더 어려워진 고용 시장과 기업의 채용 방식 변화가 꼽히는데요. 스스로를 니트족이라고 밝힌 20대 이모 씨는 “코로나19 이후 공채는 찾아볼 수 없고 직무 경험이 중요한 수시채용이 늘었는데 직무 경험을 쌓을 구멍은 틀어막힌 상황 아니냐”라며 “왜 하필 내가 대학 졸업했을 때 이런 역병이 도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국내 대기업들은 잇따라 정기 공개채용을 폐지한다고 밝혀 취업 준비생들의 취업난이 앞으로 한층 가중될 것임을 예고했는데요. 국내 한 여론조사기관이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 분석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응답 기업 121곳 가운데 54.5%의 기업이 신규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응답 기업 중 13.3%는 채용계획이 아예 없다고 답했는데요. 즉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은 채용문을 닫아뒀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문제는 니트족 증가 현상이 단시간 내에 해결이 어렵다는 것인데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어떠한 교육을 받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못한 채 1~2년을 그냥 흘려보낸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실업 상태가 길어지면 단기 임시직으로 흘러가게 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나라 특성상 노동시장에서 한 번 이탈되면 회복하기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한 경제 연구원 관계자는 “청년 세대가 자립할 의지를 잃어버리면 부모들이 노후에 대비해 축적한 자금을 자식에게 쏟아야 하니 가족 전체의 문제로 번진다고 볼 수 있다”라며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청년 무업자들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는데 마치 그때의 수순을 현재 한국 사회가 밟고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니트족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우선 전문가들은 청년 취업난을 해소를 위해 청년 개개인에게 현금 보조를 하는 방향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단기간의 경제적 원조는 취업 장려가 아닌 역으로 구직 의욕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요. 대신 니트족 문제 해법과 관련해선 사후처방이 아닌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국내 한 교육학과 교수는 “니트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청년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상담 및 체계적인 진로교육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2008년부터 16세 이상 청소년이 학교나 훈련 기관에서 중도 탈락하면 통합적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을 의무화해 꾸준히 니트족을 줄여오고 있는데요.
니트족에서 벗어나기 위한 청년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상 속 통제력 유지하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국내 한 심리학과 교수는 “매일 가벼운 운동을 하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무기력을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된다”라며 “스스로 아주 사소한 성취를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구직 준비를 위한 ‘예열’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코로나19 이후 폭증한 니트족에 대한 얘기와,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추후 코로나19 상황이 현재보다 나아져 고용시장이 다소 안정될 시 니트족의 증가세가 멈춰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