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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생들에게 등록금 최대 15배 인상, 

과연 공정할까

'유학을 간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아무래도 미국입니다. 땅도 넓고 대학도 많고, 무엇보다 학계를 이끄는 최고의 엘리트 교수들, 연구진들이 거의 다 미국의 명문대에 모여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국 유학의 치명적인 단점은 비싼 등록금입니다. 미국의 연간 대학 등록금은 평균 2만8천 달러, 한화 약 3,160만원 이라고 합니다. 이마저도 사립학교의 경우 두 배 정도 더 비싸다니,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죠.


반면 미국, 영국,호주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유학생을 보유한 프랑스의 대학은 거의 무료에 가깝습니다. 강도 높은 엘리트 교육을 담당하는 그랑제꼴을 제외한 국립대학들은 1년에 170유로, 즉 22만원 정도의 돈만 내면 되거든요. 프랑스인이 아니어도요. 물론 집세와 물가가 비싸고 학생 체류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제한이 있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대학에도 각 분야에서 알아주는 교수님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교육의 질에 비해 매우 낮은 등록금인 것만은 확실하죠.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일부러 프랑스어를 배워가면서 프랑스로의 유학을 택하기도 합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그런데 지난 11월, 프랑스 총리가 날벼락 같은 발표를 했습니다. 내년 9월부터 비EU 회원국 출신의 학생들에게 무려 16배나 많은 등록금을 받겠다고 발표한 것이죠.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외국 유학생들이 부모가 세금을 내는 프랑스의 가난한 학생들과 같은 금액의 등록금을 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답니다. 


이에 유학생 사회는 술렁이기 시작했죠. 가까운 예로 프랑스에서 6년째 공부하고 있던 제 지인도 갑작스러운 귀국을 결정했습니다. 물론 등록금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사정에 등록금 인상안까지 겹치면서 귀국 짐을 꾸리기로 했죠. 그녀는 '어쩐지 지도교수가 새로운 외국인 학생을 안 받으려고 하더라'며 총리의 발표가 있기 전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말했는데요. 프랑스는 교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것에 꽤나 자부심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등록금을 올리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이런 프랑스의 정책에 대한 나라 안팎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찬성측


찬성측의 의견은 간단합니다. 프랑스인이 내는 세금으로 외국인을 공부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교육을 받으려면 돈을 내라는 겁니다. 사실 프랑스는 공공복지 부분에 굉장히 많은 지출을 하는 나라입니다. 현 마크롱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올랑드 대통령 때 세금을 어마무시하게 올려 중산층 이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고요.  트럼프를 필두로 불어온 우경화 바람 때문인지,이런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전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한국인 유학생들 중에도 새로운 등록금 제도에 찬성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16배 올려봤자 1년에 2770유로(약 357만원)으로, 한국 대학의 1년 대학 등록금보다 훨씬 싸다는 것이죠.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 한국 4년제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671만원이라고 합니다. 전국 대학 중에 가장 등록금이 높은 학교는 연세대 신촌 캠퍼스로 970만원에 달하는데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한국 유학생들은  부담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 금액으로는 불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건 시작일 뿐, 반대측


반대측의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등록금 인상은 핑계고 비 유럽권 학생의 프랑스 유입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뒤에 깔려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특히 19세기 프랑스가 식민지화한 북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의 불만이 거셉니다.


모로코, 알제리, 세네갈 등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습니다. 프랑스는 이들 국가의 천연자원을 약탈했고, 국민들을 기간산업, 집약적 농업등에 강제로 동원했죠. 그러는 사이 프랑스어가 해당 국가에서 공용어가 되거나, 국민 대다수가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죠. 언어적 장벽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북아프리카 학생들 뿐 아니라 일부 프랑스인들까지도 '프랑스가 타 국가를 착취해 이룩한 발전으로 그들에게 거들먹거리면서, 이제는 교육의 기회마저 빼앗으려 한다'며 비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등록금을 올리는 데에도 단계가 필요한데, 당장 내년에 16배를 올리는 건 이미 프랑스에 등록해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너무 큰 타격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죠. 학업은 학업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생 설계의 아주 중요한 일부일 뿐더러, 어떤 사정으로 갑자기 학업을 중단하게 되면 지금까지 미래를 위해 해온 투자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기 쉬운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1년이라는 시간만 주고 갑자기 등록금을 큰 폭으로 올리겠다는 데 대해 학생들의 인생과 계획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판이 나올만도 하죠. 


프랑스 학생들은 지금은 비 EU학생들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유럽권, 더 나아가 프랑스 학생들에게도 등록금을 올려 받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프랑스 학생들도 비 유럽권 학생들과 연대하여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파리 1대학, 낭테르, 툴루즈, 보르도 등 각지의 대학에서 학생회 차원에서 등록금 인상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프랑스에는 이득일까?


공정하고 아니고를 떠나, 이런 정책이 정말 프랑스에 득이 되는 것인지 되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필리프 총리는 오른 등록금은 비자 신청 과정을 간소화하거나 프랑스 대학의 외국 캠퍼스, 영어 강의 등을 늘리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3배 규모로 늘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약간 의외인 사실은 이 등록금 인상 방안이 다름아닌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를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올려받는 대신 그 돈으로 더 매력적인 교육환경을 만들어 유학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인 것이죠. 


이런 계획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현재 장학금을 지원받는 7천명의 3배인 2만1천 명이 장학금을 받게 된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등록금 때문에 이탈하는 우수한 유학생들의 수를 메울 수 없을 거라는 예측입니다. 또 프랑스에서 살거나 공부한 외국인들은 프랑코필(Francophile: 친불 성향을 가진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평생에 걸쳐 프랑스 제품을 선호하고 프랑스식 정신, 프랑스의 학문 등을 높게 평가하고 자국에 전파해 줄 사람들을 무더기로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죠.


프랑스는 어디로 가는걸까


반대의 물결이 거세지자,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각 대학교 총장과 학장들에게 메일을 돌렸다고 하는데요. 등록금을 올려받는 대신 (모든 비 유럽권 학생들이 저주하는) 체류증 서류 제출을 온라인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빈민국이나 개도국 출신, 난민 등은 등록금을 면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 유럽권 16배 인상이라는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네요. 


이에 일반 국가와 빈민국, 개도국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비 개도국 출신의 빈곤한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당장에 개도국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희박한 한국의 학생들만 해도, 낮은 등록금이라는 매력이 사라지면  프랑스어를 추가로 배우면서까지 프랑스로의 유학을 계획하는 숫자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프랑스 대학의 등록금 인상이 정부의 계획대로 유학생을 더 유치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지, 등록금 인상을 통해 교육환경이 정말 눈에 띄게 개선될지, 그 결과가 궁금해 지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