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국민 브랜드로
2천억 대박낸 한국 기업은 어디
여기서 정수기 사업하면 대박 나겠다
혹시 유럽 여행하면서 이런 생각 해보신 분 안 계시나요? 레스토랑에서 생수를 사 먹자니 비싸고, 공짜로 주는 수돗물을 마시자니 괜히 탈 날 것 같고, 석회도 많다고 하니 찝찝하잖아요. 여기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해외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한국 정수기 업체가 있습니다. 유럽이 아니고 말레이시아지만요. 이 기업은 어디고 왜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1차전, 말레이에서 2차전
사실 한국의 정수기 시장은 포화 상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정수기를 들여놓을 집들은 거의 다 들여놓았죠. 국내에서 렌털 사업을 하는 기업 수도 최근 10년 새 10여 곳으로 늘어났다고 하는데요. 이에 한국의 정수기 업체들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주자는 '정수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코웨이였습니다. 코웨이는 2006년 말레이시아에 처음으로 진출해 렌털과 관리 서비스를 선보였는데요. 그 뒤를 이어 쿠쿠홈시스와 청호 나이스, 최근에는 SK 매직까지 말레이시아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왜 말레이시아일까?
출처: 네이버 블로그 큰덩치미
그렇다면 다른 나라를 두고 업체들이 우르르 말레이시아로 몰려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말레이시아의 수돗물 수질에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주로 생물학적 산소요구량, 암모니아성 질소, 부유 고형물과 같은 주요 오염원의 비율이 높은 하천에서 물을 끌어온다고 하는데요. 이에 따라 상수도의 물을 그대로 마시기도 어렵고, 물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또한 높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개방적인 시장구조와 비교적 높은 정치제도의 투명성도 한몫했다는데요. 인구나 경제 규모로만 따지면 이웃의 인도네시아가 훨씬 월등하지만, 정치 경제 방면의 모든 리스크까지 계산했을 때는 말레이시아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또한 위치상 동남아 국가들의 중심에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여기서 성공을 거두고 나면 말레이시아를 근거지 삼아 가까운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진출하기에 용이하겠죠. 같은 이슬람권인 중동 국가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웨이의 승승장구 비결은
코웨이는 2006년 말레이시아 시장에 진출해 지역 정수기 시장에서 30%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습니다. 10년 뒤인 2016년에는 매출 5억 1,000만 말레이시아 링깃(한화 약 1,379억), 지난해에는 매출액 7억 9,000만 말레이시아 링깃(한화 약 2,136억) 을 기록했죠.
코웨이는 어떻게 우리와 별 관계도 없는 나라에 가서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바로 렌털 서비스 및 코디 서비스였습니다. 한 코웨이 관계자에는 정기적인 제품 관리 서비스 개념이 부재했던 말레이시아에 이러한 서비스들을 한국과 동일한 높은 수준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현지 정수기 업체들은 소비자가 직접 필터를 교체해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기에 관리 서비스에 대한 반응이 더욱 좋았다고 하네요.
현지 문화와 관습에 대한 이해도 말레이시아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데요. 코웨이는 2010년 정수기 업체 최초로 말레이시아에서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고 합니다. 할랄 인증은 이슬람교도가 먹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 처리, 가공된 식품에만 부여되는 인증 마크입니다. 할랄 인증 획득은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안심하고 코웨이 정수기 물을 마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단정한 옷차림도 말레이시아 국민들에게 어필했습니다. 코웨이를 따라 사후 관리 서비스를 도입한 현지 업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통상 작업복 등의 차림으로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는데요. 이에 비해 깔끔한 유니폼 차림의 코디들에 대해 현지인들이 좋은 인상을 받은 것이죠. 또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싱글 맘이나 경력 단절 여성 등이 주로 코디로 일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코웨이의 기업 이미지도 좋아졌답니다.
한국 업체의 레드오션 될까
외국에서 한국 업체들이 잘 나간다고 하니 뿌듯하긴 한데, 일각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최근 SK 매직이 말레이시아 법인을 설립하면서 국내 정수기 업계의 대표주자들이 한 나라에 모여 경쟁을 펼치는 구도가 연출되었기 때문인데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않고 길들여진 소비자와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에 들어가 타사 조직을 빼앗는 방식으로 이윤을 올리려고 한다면, 결국 제살 깎기 밖에 되지 않겠죠.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경쟁 없는 시장을 고르고 특화된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각각의 기업과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