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
기록의 사나이, 이세돌이 남긴 말이다. 그는 1995년, 12살의 나이로 프로에 입단하였는데 이는 한국 프로 기사 중 최연소 입단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처럼 입단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그는 2000년 들어 32연승과 함께 ‘불패 소년’이라는 별명을 손에 넣었고 생애 첫 우승까지 거머쥐게 된다.
2007년에는 국내 1인자로 우뚝 섰으며 2014년, 14억 1000만원으로 연간 최대 상금 기록마저 갱신해버린 이세돌이다. 그리고 2016년, 대망의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전 인류를 통틀어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라는 다시없을 놀라운 기록까지 세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수한 기록을 남긴 ‘쎈돌이’ 이세돌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그의 근황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에 이어 한국에서 배출한 최강의 프로 바둑 기사로 세계에서도 정점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빠른 입문과 천재성을 집안 환경의 영향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형제자매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바둑을 배웠고 그 영향으로 대부분이 바둑 업계에 종사 중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이세돌이다.
그가 처음 바둑을 접한 때는 6살 무렵이었다. 당시 바둑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동네 아이들 십여 명을 불러 모아 바둑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에 이세돌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바둑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늦게 배움을 시작한 이 어리디 어린 꼬마가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찌감치 이세돌의 재능을 간파하고 본격적으로 바둑을 가르치지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와 같은 천재성은 때론, 다른 이에게 허탈감과 패배감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가 그의 형, 이상훈이다. 그도 바둑에 재능을 보여 프로에 입문하였지만 어린 동생의 놀라운 실력을 보고 이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바둑으로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고 동생의 지원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그런 형을 따라 12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로 입단한 이세돌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세돌은 형이 서포트를 자처하게 만든 천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노력가이기도 했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것이 있는데 대국이 끝난 뒤, 대국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처음부터 순서대로 다시 두어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세돌은 복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물도 안 마시는 엄청난 복기광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국 끝난 직후 그 자리에서 복기를 끝까지 하지 못하면 발전도 없다고 생각하여 복기에 집중한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도 뒷받침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최고의 기사, 이세돌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2007년, 국수 타이틀까지 차지하며 명실상부 국내 바둑 1인자가 되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바둑 종목으로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의 영광은 2012년까지 계속되었다. 삼성배 우승까지 차지하며 세계 1인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이세돌이다.
그런 그가 안타깝게도, 30대에 접어들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부턴 예전 같지 않은 기량으로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내리 차지하였다. 2016년 4월부터는 박정환 9단에게 한국 랭킹 1위 자리를 물려주고 아쉽게 2위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세돌의 인생에 있어서도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이었다.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진 이 경기에 세계인 모두가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세돌은 3연패 끝에 드디어 1승을 차지하게 된다. 비록 마지막 경기도 알파고에게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에게는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그는 당시에 “한 판을 이겼는데 축하를 받아보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3연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더불어 "사실 진다고 생각을 안 했는데 너무 놀라웠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렇게 ‘유일하게 알파고에게 한판이라도 이긴 사람’이라는 놀라운 커리어를 하나 쌓은 이세돌이다. 한편, 알파고와의 대국을 계기로 바둑에 문외한인 외국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도 함께 사진을 찍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그는 “컴퓨터와 싸워서 이긴 세계 챔피언과”라는 글과 함께 SNS에 사진을 올렸다.
알파고와의 대전 이후 바둑을 즐기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는 이세돌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는 듯 보였다. 알파고와의 대국 후 8연승을 달리면서 맥심커피배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다시 꽤나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2018 한국 바둑리그에서는 4승 10패, 중국 갑조리그에서는 5승 8패를 거두며 양국 리그를 마감한 이세돌이다. 그가 갑조리그에서 5할 승률 미만으로 떨어진 시즌은 참가 첫해였던 2004시즌 이후로 두 번째라고 한다. 소속팀 취저우도 패하면서 내년 시즌은 을조리그로 강등까지 확정됐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이전의 기사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여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