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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주기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인데요.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실질적으로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장 빠르게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기업들과 어떤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어기면 처벌받는 주 52시간제


기존 근로기준법과 주 52시간 근로제 / edaily

주 52시간 근무제는 평일 40시간, 평일 연장근무와 휴일근무를 합쳐 12시간까지 근로시간에 제한을 두는 제도입니다. 주 68시간이 허용되었던 기존의 근로기준법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있죠. 작년 7월부터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선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었는데요.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됩니다.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보건업 등은 사업의 특성을 고려해 근로시간이 규정되지 않습니다. 


근로시간 위반 시 과태료만 물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사업주 형사 처분이 가능하다.

올해 4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유예기간이 끝났습니다. 즉,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선 주 52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죠. 4달간의 시정 기간이 있으며 시정이 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50인 이상의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죠. 


근로시간 선택하는 삼성전자·카카오 


삼성 전자는 통근 버스 막차 시간까지 앞당겼다.

삼성전자는 의무 근로시간대(보통 1일 8시간)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분배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습니다. 대체 인력 투입이 어려운 R&D 부서와 사무직에 적용되는데요. 업무 몰입도가 높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3개월 단위로 근로 시간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매 달마다 직원들에게 남은 근로시간을 알려주며 철저히 관리합니다. 이외에도 수업 사업장 통근 버스 막차 시간을 앞당기고, 일요일 야근자는 월요일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하는 등의 대응을 했습니다.


카카오의 조수용 공동대표는 "일 잘하면 하루 1시간 근무해도 좋다"라고 했다.

카카오의 경우 조금 다른데요. 애초에 의무 근로시간대 자체가 없습니다. 출, 퇴근 시간은 물론 근로 시간 역시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죠. 실제로 하루 10시간씩 근무한다면 주 4일 근무도 가능한데요. 삼성전자와 달리 1개월 단위로 근로 시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연장 근로는 조직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1주에 12시간 이내로 제한을 둬 불필요한 장시간 근무를 차단했죠. 


칼퇴 필수인 신세계·KT&G


상반기 실적이 좋지 않았던 SSG 닷컴, 이마트에선 PC 오프제가 철회됐다.

신세계의 경우 주 35시간 근무제를 파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구조인데요. 오후 5시 20분이 되면 PC가 일괄적으로 종료되는 'PC 오프제'가 적용됩니다. PC 오프제의 경우 이번 달 5일부터 이마트와 SSG 닷컴에선 철회되었으나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선 유지되고 있습니다. 업무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신세계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유통 채널별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노력을 보였죠. 


네트워크 차단을 시행 중인 KT&G

KT&G의 경우 오후 6시 30분이 되면 PC는 멀쩡하지만 인터넷 네트워크를 아예 차단 시킵니다. 이외에도 한화건설, CJ, 교보생명 등에서도 PC 오프제, 소등제를 사용해 직원들의 초과 근무를 제한하고 있죠. SKC와 한화 63은 일찍 퇴근하는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도록 자율 좌석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주 4일 근무 가능한 SK


SK의 모든 계열사가 주 4일 근무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SK에서는 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주 4일 근무가 가능합니다. 물론 SK 수펙스 추구협의회와 SK(주)직원들에 한하죠. 업무상 주말 근무, 야근이 잦아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기 위해 시도된 방법인데요. 매달 두 번 금요일에 쉬지만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근무를 하기도 합니다. 


일한 만큼 휴가 받는 롯데


롯데 쇼핑 직원이 PC 오프 화면을 보고 있는 모습 / 롯데 쇼핑

롯데에서는 초과 근무를 하면 임금 대신 휴가로 보상받는 근로시간 저축 휴가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 직원들이 정한 퇴근시간에 맞춰 PC가 종료되며 퇴근 후 업무 지시를 막는 메신저 역시 차단되죠. 롯데 식품 계열사에서는 근로 시간 단축을 위해 생산 인력을 추가로 고용했는데요. 식품 사업 특성상 비수기, 성수기를 고려해 3개월 단위의 유연 근무제를 선택했습니다. 성수기에 집중 근로를 하면 비수기에는 업무량이 줄어드는 식이죠. 


조금 일하고 많이 벌기, 가능할까?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기업들을 알아보았는데요. 직원들 입장에선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워라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신세계, 롯데 식품의 경우 빠른 퇴근을 위해 집중근무 시간을 도입했는데요. 일부는 이 시간대에 흡연실이 잠기며 화장실을 가거나 간식을 먹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LG 전자, 현대차,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의 경우 업무용 컴퓨터에 개인 시간을 입력합니다. 커피를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는 등 업무 이외의 활동을 할 때에는 10분 단위로 기록해 근무시간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것이죠. SK(주)의 주 4일 근무 혜택을 누리는 직원들은 극소수이며 과도한 업무량으로 여전히 야근과 휴일 근무가 필수라고 합니다. 


철저히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기업도 분명히 있다. (위메프의 퇴근 시간 모습)

심한 경우 직원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거나 흡연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하기도 합니다. 또,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는 척 여러 가지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도 많습니다. 기업 내에서 법인을 따로 분리해 근로자를 사용자로 만드는가 하면 근로계약서에 이미 초과근무, 야근 수당이 포함되어 있는 포괄 임금제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죠.


주 52시간 근무제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근로자들의 워라밸은 물론 기본적인 휴식 시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곳들도 많습니다. 한 게임회사에선 퇴사 예정인 직원을 96시간 근로시켰다 기절해 논란이 됐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근로자들은 "차라리 일 많이 하고 그만큼 돈이라도 받아 가는 게 낫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 52시간제 불만 있는 이 업계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기업들 역시 정책의 미흡함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IT, 반도체·디스플레이, 게임 업계에서는 프로젝트, 업계 특성상 집중 근로가 필요한데 주 52시간 근로제로 오히려 생산성에 제한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현재 3개월로 제한되어 있는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1년까지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많았죠. 물론 과로를 정당화하고 근로자들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근로자들의 반대 입장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은행들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비슷한 예로 KB 국민은행의 경우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영업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며 불편을 호소했습니다. 기존에 이 시간이 시간외근무로 인정받아 대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무료 노동이 된 셈이니까요. 일부 지점에서 정시 출퇴근을 강제하며 시간외근무를 신청한 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퇴근 후 여가 시간을 즐기는 직장인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 52시간 근로제 덕분에 저녁 시간을 갖게 된 이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정시에 퇴근해 하고 싶었던 취미, 여가 시간을 갖는 직장인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죠. 근로자들을 위한 정책이니만큼 기업과 근로자 양측이 만족할 수 있는 대책과 함께 주 52시간제가 적용될 예정인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역시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대안을 고민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