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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트랜스 젠더가 방송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처음만 어려웠을 뿐,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죠.


'국내 최초 트랜스 젠더 모델'로 등장한 최한빛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각종 방송에서 활약하며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델이자 배우로, 그리고 가수에도 도전했던 그녀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누구보다 평범함을 꿈꾼다는 최한빛 씨를 만나보았습니다.



무용을 전공으로 선택한 최한빛 씨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06년 수술을 통해 남성에서 여성이 되었죠. 여성이 되고 난 후, 정체성을 고민할 때는 생각할 수 없었던 꿈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슈퍼모델 선발 대회에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1차 예선이 끝나고 최종 50명 안에 들었을 때 그녀가 트랜스 젠더라는 소식이 밝혀졌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최한빛 씨에게 정말 여성이 맞냐며 재차 되물었죠. “이미 서류 접수를 할 때 주민번호가 ‘2’인 등본을 확인했고, 대회도 문제없이 진행했습니다. 제 상황이 밝혀지자 다시 여성임을 확인하려는 모습에 억울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그녀는 최종 32명을 뽑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한 여성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는 말로 심사위원과 대중들을 사로잡았죠. 이어진 장기 자랑에서는 가면을 이용한 무용을 선보였습니다.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과거를 벗어던지고 최한빛이라는 사람 자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무대에 녹여냈습니다. 그 간절함이 통했을까요. 그녀의 무대는 큰 호평을 받으며 최종 32인에 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당당해야지만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회에 임했습니다.” 사회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최한빛 씨가 늘 당당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당당할 때, 우리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며, 그녀를 딸로 인정해주었죠.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최한빛 씨에게는 문제가 될 건 없었습니다. 그런 간절함이 당당함이 되어 세상에 드러난 것이 그녀가 최종 32인까지 들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SBS 소속 슈퍼모델로서 1년간 활동했습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엄청난 러브콜을 받았죠. 그때 <공주의 남자>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기를 아예 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다신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죠.”


모든 처음은 어려운 법이죠. 갑작스레 대본을 받고 준비한 터라 그녀는 스스로도 연기에 대해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무용, 모델과는 다른 점도 많아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공주의 남자>를 이어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에서 활약한 그녀는 대학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현장에서 연기를 직접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연극을 하기 전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에도 출연했던 그녀에게 트랜스 젠더 배역을 제안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더 알릴 수 있는 기회였지만 최한빛 씨는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 “물론 제가 트랜스 젠더 역할을 하면 대중들에게는 더 와닿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역할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방송이 아닌 연극에 더 집중했던 것도 이 점 때문이었습니다. 최한빛 씨는 트랜스 젠더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활동할 때 메리트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싫었습니다. 연극에서는 트랜스 젠더 역할에서 벗어나 임산부, 첫사랑에 빠진 고등학생 등 다양한 인물을 연기할 수 있었죠. 관객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대학로에서 배우로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공을 살려 꾸준히 공연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배우가 가장 어렵고 도전하고 싶은 분야라면, 무용은 그녀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죠. 최근에는 <영혼 컬렉션>이라는 작품을 공동 연출하기도 했는데요. 실제 성범죄 사건을 연극과 무용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관객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연극과 공연에 계속 얼굴을 비추고, 독립 영화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현역 모델과 무용수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을 날이 얼마 남지 않다고 느껴, 의류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그녀이지만, 방송에서는 얼굴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출연 제의는 많이 받지만 여전히 제 역할은 트랜스 젠더라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 더 다양한 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른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중입니다.”


매번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트랜스 젠더’라는 수식어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라 답했습니다. “이 수식어가 없었으면 유명해지지 못했겠죠. 그걸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제가 살아가면서 꼭 깨야 하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이 노력하고 있죠.” 그녀는 대중들이 이런 수식어가 아닌 그저 인간 ‘최한빛’으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무용수, 모델, 배우, 그리고 사업가까지. 누구나 할 수 없는 분야를 경험하며 도전을 즐기고 있는 최한빛 씨의 좌우명은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가 사라지는 법이다’라고 합니다. 도전이라는 단어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보다는 두려움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하죠. 그녀의 도전이 유독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