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은 국내 대형 기획사 3사 중 하나로 뽑히는 JYP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사내 등기이사이자 가수입니다. 특이한 음색과 퍼포먼스, 댄스 실력뿐만 아니라 수준급의 작곡 능력도 갖춘 그의 콘서트는 여전히 인기가 높은데요.
그런 그가 과거 각종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그중에는 국내 유명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도 속해 있었는데요. 박진영은 tvN ‘인생 술집’에 출연해 오디션 당시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냈죠. 이수만이 어떤 제안을 했길래 박진영이 “안 팔아요!”라고 대차게 말하고 오디션장을 나간 것인지, 그 이후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수만, “너 그 곡만 안 팔래?”
박진영이 수많은 기획사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지자 클론의 구준엽이 직접 이수만과 만나 그에게 SM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는데요. 오디션 곡인 자작곡 "날 떠나지 마"를 완곡하고 숨이 가쁘던 박진영을 보며 이수만은 한숨을 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탈락시켰습니다. 탈락 후 돌아가려던 그를 다시 불러 세운 이수만이 한 말은 "너, 그 곡만 안 팔래?"였고, 울분이 치민 박진영은 "안 팔아요!"라고 소리를 치고 나왔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에 SM 소속 가수인 김희철이 "우리 회사 얼굴 안 보는데?"라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MC를 보던 신동엽이 "그 선이라는 게..."라고 말을 흐려 웃음을 자아냈는데요. 그 정도로 박진영의 외모는 매우 개성 있어 당시 가수나 연예인의 비주얼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죠. 이러한 외모로 인해 모든 오디션에서 떨어진 그는 그날이 '내 인생의 가장 슬펐던 날'이었고, 더 갈 기획사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작곡가 김형석 밑으로 들어가
SM 탈락 이후 작곡가 김형식이 있는 소속사에 뽑힌 그는 김형식의 제안으로 기존의 피아노 발라드 곡이었던 SM 오디션곡 '날 떠나지 마'를 댄스곡으로 편곡해 1994년 9월 데뷔하였습니다. 흑인 필링을 강조하고, 엉덩이춤을 선보이인 이 노래는 당시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후 정우성의 데뷔 CF 광고 음악에도 쓰일 정도로 유명해졌으며, 1995년까지 47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죠.
이후 후속곡인 '너의 뒤에서' 역시 반응이 좋았으며, 1995년 2집 타이틀곡 '청혼가'는 서태지와 아이들, R.ef 등 당시 최고 인기 가수들을 제치고 가요톱텐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안이 다 비치는 비닐 바지 패션, 성적인 분위기의 '엘리베이터' 등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으며, 한국 대중음악 사상 전무후무한 남성 섹시 코드를 드러내는 도전을 계속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에 경향신문에서는 그에게 '한국의 타이슨'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는데요. 당시 노래 가사 속 '나의 노래는 타이슨의 주먹보다 강하다'이란 문구 때문이었죠. 이후로도 '그녀는 예뻤다', '썸머 징글벨', '난', '허니' 등의 대형 히트곡들을 꾸준히 배출한 그는 2001년 6집 이후 음반 발매를 멈추었습니다.
프로듀서 박진영
그는 1999년 데뷔한 god를 시작으로 2000년대부터는 프로듀싱에 본격적으로 집중하였습니다. 그들을 '국민 그룹'까지 성장시킨 그는 이후 비, 별, 노을, 임정희 등 다수의 인기 가수들을 배출해냈습니다. 2007년부터는 원더걸스를 시작으로 아이돌 그룹도 프로듀싱도 도전했는데요. 원더걸스의 'Tell Me' 열풍은 전국을 강타하였으며, 걸그룹 열풍의 시발점이 되었죠. 이후 발매한 'So hot', 'Nobody' 역시 히트를 쳤으며, 2008년 데뷔한 2PM, 2AM도 성공적으로 키워내며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다시 본업으로, 프로듀싱도 놓지 않아
한동안 프로듀서로만 활동하던 그가 다시 가요계로 복귀한 것은 2007년 7집 발매부터입니다. 타이틀곡인 '니가 사는 그 집'은 성공적이었으며, 가수로 돌아온 그는 이후 정규 앨범은 재지 않고 미니 앨범 및 싱글 앨범을 내며 꾸준히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오랜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2015년 래퍼 제시와 함께 작업한 '어머님이 누구니' 싱글 앨범은 발매 5시간 만에 역주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대단했죠.
2007년부터 20131년까지 진행한 단독 콘서트 '나쁜 파티' 전국 투어는 매회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그는 가수에만 집중하지 않고, 프로듀싱도 병행했는데요. 2015년에는 트와이스 멤버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 이전에도 K-pop 스타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I.O.I의 마지막 앨범 타이틀곡 '너무너무너무', 트와이스의 곡 다수를 프로듀싱하였죠.
이렇듯 그는 가수로서도, 프로듀서로서도 성공을 거둬내었습니다. 자신의 일대기를 담아낸 2016년 신곡 '살아있네'에서 그의 가수로서의 삶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곡에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한 그의 수많은 도전들이 담겨 있죠. 또한 프로듀서로서 다수의 가수들을 성장시킨 그는 2018년 한 해 만에 주가를 상승시켜 주식 보유분에서 1300억 원 이익을 달성하며 그 성공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청난 끼와 재능이 있음에도 개성 있는 외모로 인해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하였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도전하는 정신력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7전 8기의 자세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은 본받을 만한데요. 가수 JYP, 프로듀서 J.Y.Park ”The Asiansoul”로서의 많은 활약이 기대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