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병원에 갈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고려합니다. 자신의 증상에 맞는 처방을 해주는 병원은 어디인지, 심지어는 직원들의 친절도까지 찾아보곤 합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전문성입니다. 전문성이 있는 의사가 처방해주는 진단이 가장 신뢰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instagram@grangeeiro
동네 의원에서 진찰을 받고 큰 병이 의심되면 의사가 큰 병원을 가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환자들은 대학 병원이나 종합 병원 등을 찾아가 좀 더 전문적이고 정밀한 검진을 받습니다. 반면 최근 미국 혈관외과 학회가 발표한 의사의 전문성을 판단하는 방법을 실은 논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즈에 논문 하나가 실렸습니다. 그 논문은 미국 혈관외과 학회가 발행한 것입니다. 논문 속에서는 “의사가 속옷, 핼러윈 복장, 수영복/비키니 등 ‘부적절한 의상’을 입은 사진을 찍은 경우 비전문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학술적 성과나 전문 지식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논문이 아니었습니다. 의사의 사생활과 관련한 주장이 담겨 있던 것이지요. 특히나 비키니 수영복을 부적절한 의상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여의사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이로 인해 SNS에서 그녀들은 ‘메드 비키니(Medbikini)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메드 비키니’ 캠페인이란 논문에 항의하는 여성 의사들이 자신의 SNS에 비키니 사진을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녀들이 해시태그 #medbikini를 언급한 게시물은 약 2만여 개를 기록하게 됩니다.
twitter@Vera Bajarias
필리핀에서 훈련 중인 학자 베라 바자 리아스(Vera Bajarias)는 그녀의 트위터에 “나는 자유 시간에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고, 직장에서는 유능하고 자비로운 의사다.”라는 글과 함께 비키니를 입은 자신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또한 그녀는 “이 논문이 빛을 본 순간 반발이 일어났어야 했다”, “나는 여성 의사로서 의학계가 성차별주의라는 것을 인식했고, 여성이 동등하게 간주되지 않는 한 의학계는 완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라고 밝혀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또 다른 여성 의사는 비키니를 입은 상태로 환자를 구한 경험담과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공유한 내용에는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긴급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성차별적인 연구가 승인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의학계 성차별을 비난했습니다.
twitter@Anthony Tucker
미국의과대학협회의 재니스 오를로우스키 박사는 “수영장에 간 수백 명의 남성 의사들도 사진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논문을 위해 선택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본질적인 젠더 문제가 반영된 것이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논문 속 성차별적인 발언도 굉장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혈관외과 학회가 게시한 논문에는 콕 찝어 여성의 비키니 수영복이 언급됐다는 것을 볼 수 있죠. 이에 많은 의료진들은 그 내용이 여성을 표적하고 의료 분야의 성차별 문제를 부각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몇몇 남자 의료진들 또한 논문 속 주장에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의료진들 또한 해시태그 업로드에 동참하며 캠페인은 더 크게 확산됐습니다. 그들은 여자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해시태그와 함께 업로드했습니다.
플로리다의 이비인후과 의료진인 안소니 터커는 “이 연구가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대에 다닐 당시에 여자 멘토와 레지던트 선생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외과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캠페인을 지지했습니다.
많은 의료진들의 반발로 인해 논문의 저자 토마스 청(Thomas Cheng)은 논문에 대해 크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논문은 곧 철회될 것이라고 발표했죠. “우리의 목적은 환자와 의사 동료가 의료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그렇게 느낀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