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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남 최인근 씨가 SK E&S에 입사하며 SK그룹의 후계 구도 경쟁에 막이 올랐습니다. 2017년 장녀 최윤정 씨는 SK 바이오팜에, 차녀 최민정 씨는 2019년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했죠.


그룹 관계자는 1960년생인 최태원 회장이 여전히 건재하기에 경영권 후계 이야기를 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혔는데요. 그럼에도 SK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가 누구인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국내 재벌그룹의 후계 구도. 보통 장남이 그룹을 물려받는 재벌 구조에서 의아한 결단을 내린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재계 1위 삼성그룹인데요. 7남매 중 막내, 장남과 차남이 아닌 3남 이건희가 현재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60년대 중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심을 잡기 위해 비료값을 낮추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국내에 최초 비료 공장을 세우는 것이었죠. 이때, 박 전 대통령은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과 손을 잡았습니다. 1964년 이병철 회장은 울산 35만 평 부지를 매입하며 부족한 투자 자금을 정부의 지불보증을 통해 메꿨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비료공업(현 롯데 정밀화학)입니다. 


일부 비자금을 물건으로 들여와 활용하고 수입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주는 것으로 말을 맞췄죠. 삼성은 일본 미쓰이 그룹과 공모해 약 55톤의 사카린을 건설 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고 했는데요. 사카린 이외에도 일제 냉장고, 밥솥 등의 품목을 밀수하다 모두 적발되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적발 당시 공론화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후, 과거부터 중앙일보를 견제했던 경향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됐죠. 


해당 사실이 밝혀지며 부산 세관은 사카린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민심을 붙잡으려다 되려 위기를 맞게 된 박 전 대통령은 재벌 밀수는 반국가적 행위임을 강조하며 꼬리를 잘랐습니다.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중앙일보를 견제하던 기존의 언론사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삼성그룹을 비판했습니다.


이때, 국회의원이었던 김두환이 해당 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 중 정일권 국무총리 등의 각료를 향해 인분을 뿌린 '국회 오물 투척 사건'도 발생했죠. 결국 이로 인해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공업과 대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를 정부에 헌납하고 결국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습니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장남인 고 이맹희가 승계하게 됩니다. 둘째 이창희는 사카린 밀수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갔는데요. 이때, 이병철이 이창희에게 장남 이맹희를 살리기 위해 "네가 대신 총대를 메고 감옥에 가라"라고 종용했다는 비화도 있습니다. 이맹희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 제당, 신세계 등 무려 17개 주력 계열사의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으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에 따르면 6개월 만에 경영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요. 이맹희는 한 회고록에서 6개월이 아니라 7년이었고 물러난 것은 기업이 혼란에 빠져서가 아니라 몇 마디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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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감옥에서 나온 둘째 이창희는 삼성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내기에 이르는데요. 이를 재계에선 '삼성가 왕자의 난'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탄원서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패륜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창희는 결국 내쫓겼죠. 이병철은 이창희의 왕자의 난의 배후에는 이맹희가 있을 것이라 의심했는데요. 정확한 사실은 아직까지 공개된 바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학 중이던 3남 이건희가 유학 중 복귀하며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했습니다. 왕자의 난이 터지는 바람에 두 형보다 후계구도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됐죠. 게다가 경영 실적 면에서도 아버지인 이병철에게 합격점을 받았는데요. 동양방송 드라마 부문을 직접 챙기는가 하면, 경영진의 반대에 부딪혀 개인 사재로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며 현재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건희는 국내 1위 기업을 이끄는 총수답게 경영 방식 역시 철두철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취임 당시 연간 매출 13조 5000억 원 정도에 불과했던 삼성그룹은 이건희의 경영으로 20년 만에 세계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죠. 특히, 국내에선 1위였지만 세계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삼성의 전자제품들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그의 서가엔 경영학 서적보다 미래 과학, 전자, 우주, 항공 등 공학 관련 서적이 꽂혀있습니다. 미세한 부품의 기능 차이까지 꿰고 있다는 일화도 있죠. 덕분에 반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어진 무노조 경영은 늘 삼성그룹의 비판거리였는데요. 창업 때부터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방해로 그간 생겨왔던 크고 작은 노조는 모두 와해되었죠. 특히,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의 이상훈 전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등에 가담한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최근 이건희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80년 넘게 이어진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보통 노조 방해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사과했던 삼성그룹의 행보와는 조금 달랐죠. 이 부회장은 더 이상 노조 설립을 막는 것이 시대 흐름상 불가하다고 판단했는데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에는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생겼고 이후 삼성화재, 삼성디스플레이 등에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노동계에선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 노총 산하 삼성 노조가 사 측에 요구하는 교섭에 여전히 소극적인 점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