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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현관문이 커다란 통유리로 돼 있다면 어떨까요? 집 앞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집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상당히 불편할 것 같은데요. 실제로 국내에 현관문을 통유리로 만든 아파트가 있습니다. 

처음 디자인이 공개됐을 때부터 화제가 됐고, 주민들이 입주할 땐 큰 논란이 생겼는데요. 과연 현관문을 통유리로 만든 이 아파트는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의 임대주택


통유리 현관문 아파트는 강남구 자곡동에 위치한 강남보금자리 주택 지구 3단지(이하 LH 3단지)입니다. 이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저소득층을 위해 지은 임대주택인데요. 영구임대주택 192세대와 국민임대주택 873세대, 총 1,065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입니다. LH 3단지는 2010년 국토교통부가 특별건축구역으로 선정하며 그린벨트를 해제해 임대주택으로 개발한 구역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별건축구역에 선정된 LH 3단지는 참신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아파트로 지어져야 했는데요. 이 때문에 LH에서는 이 아파트에 대한 국제현상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당선된 것이 책 ‘마음을 연결하는 집’으로 유명한 일본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었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이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지역사회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마당을 공유하는 아파트


야마모토 리켄이 LH 3단지의 현관문을 통유리로 설계한 이유 역시 본인이 주장한 지역사회권이라는 개념을 건축물에 투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거환경은 한옥에서 주택, 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했는데요. 그러면서 우리의 주거문화에서 사라진 ‘마당’과 ‘사랑방’을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 함께 공유하자는 목적이었죠.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거실과 마당의 역할을 하는 복도 사이의 문을 통유리로 만듦으로써 이웃 간 소통의 장이 열리고, 이웃들이 모이던 사랑방과 마당을 구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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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LH 3단지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이기 때문에 주민 간 소통이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는데요. 야마모토 리켄은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의 위급상황 발생 시 이웃들이 쉽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사회는 가족이 해체되고, 이웃 간의 얼굴조차 모르는 사회로 변화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노인 소외 현상 등의 사회 문제를 본인이 주장한 지역사회권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통유리 현관문,

사생활 노출 논란으로


하지만 야마모토 리켄의 이런 생각은 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LH 3단지의 입주 당시 입주민들은 통유리 현관문에 대해 크게 불만을 제기한 것이죠.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안들 다 볼 수 있게 만들면 어떡하냐” “임대 아파트라고 이렇게 막 지어도 되는 것이냐” 등 비판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입주민들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해당 아파트가 알려지면서 누리꾼들 역시 크게 비판하기도 했죠.

사실 LH 역시 이러한 불편함을 예상하고 건설 단계에서 디자인 수정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었는데요. 이에 대해선 공모를 통한 설계였기 때문에 LH에서 임의로 이를 수정할 수 없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2013년 아파트가 준공된 이후 입주가 시작될 때 LH는 입주민들에게 현관문을 가릴 수 있는 블라인드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사생활 노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게 됐습니다.

입주 당시 집안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현관문에 당황해서 불만을 제기했던 주민 중 상당수가 현재는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는데요. 다만 통유리로 만들어져 단열에 취약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집에선 현관문에 에어캡(뽁뽁이)를 붙이고 생활하고 있었죠. 사실 처음에 제기됐던 사생활 노출 문제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는데요.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 주민은 “어차피 블라인드로 다 가릴 건데, 왜 현관문을 통유리로 만든 지 모르겠다”라며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통한 건축가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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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란이 생기면서 야마모토 리켄에 대한 국내 이미지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야마모토 리켄이 최근에 다시 한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이 다시 한국을 찾은 이유는 그가 설계한 판교의 타운하우스 ‘월든힐스 2단지’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월든힐스 2단지 역시 LH 3단지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사방의 벽을 통유리로 처리한(투명 현관 홀) 것이 거부감을 일으켰고 분양이 잘 안되면서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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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입주 10년 뒤 월든힐스 2단지의 주민들이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에게 감사 인사가 담긴 이메일을 보내고 그를 초청해 작은 파티를 열어 줬는데요. 실제로 살아보니 삶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은 실제로 돈독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야마모토 리켄이 야심 차게 준비했던 2층 공동 데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웃과 함께 파티를 여는 집도 많았습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판교의 월든힐스 2단지와 강남의 LH 3단지는 지역사회권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라며 “이웃과 접촉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고 사생활이 필요한 곳은 엄밀하게 구분해 놨지만, 항상 부정적인 면만 부각됐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LH 3단지의 경우에도 현관이 통유리인 점을 제외하면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해둔 ‘공동 공간’에 대해선 대부분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파트 저층의 경우 복도를 나서면 바로 등장하는 ‘커먼 필드’는 입주민들이 모이는 열린 마당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저층 아파트 옥상에 마련된 텃밭을 통해 함께 농작물을 키우면서 소통하고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많은 논란도 있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주거환경을 제안한 LH 3단지, 이곳에서의 삶이 어떤지 더욱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