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역 일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기란 참 쉽지 않은데요.
방송인 홍석천은 한때 이태원 일대에 잘나가는 식당들을 여럿 운영해 ‘이태원 황태자’, ‘이태원의 큰손’으로 불렸습니다. 이국적이고 특색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태원 거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도 2000년대 초 문을 열었던 홍석천의 식당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방송보다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았던 그가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사업장을 정리하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운영 중인 매장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합니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매장을 운영했던 그가 과연 어떠한 연유로 식당CEO 타이틀을 내려놓게 됐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홍석천은 국내 연예인 최초로 커밍아웃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는 지난 2000년 9월 26일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고백한 바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는 자신을 인정해달라는 홍석천의 바람을 철저히 무시했는데요. 커밍아웃 이후, 홍석천은 ‘나라를 떠나라’ ‘더럽다’ 등의 말을 듣거나 집 현관에 욕설이 쓰여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그는 커밍아웃 이후 방송가에서도 퇴출당하다시피 했는데요.
커밍아웃 이후 방송활동이 중단된 홍석천은 이태원에 터를 잡고 외식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홍석천은 그간 방송에서 수차례 이태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데요. 그는 “한국에서 좀 다른 존재들, 저 같은 사람들에게 이태원은 너무 편안한 안전지대 같은 공간”이라며 “그 때문에 맨 처음 가게를 열 때 이태원에서 시작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홍석천의 첫 식당 ‘아워플레이스’는 잘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업계에서 유명한 쉐프를 어렵게 모셔오고, 발이 닳도록 일했지만 창업 후 3년 내내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요. 홍석천은 당시 나이트클럽 DJ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겨우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홍석천이 요식업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데는 그가 2번째로 문을 연 식당 ‘마이타이’였는데요. 테라스가 있는 1층에 자리한 태국요리전문점 마이타이는 접근성 좋은 위치와 당시 접하기 어려웠던 메뉴 덕에 첫 달부터 6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대박을 쳤습니다. 홍석천은 “한 달에 2억원까지 팔아본 적도 있다”라며 “마이타이는 외식업의 성공이란 걸 저에게 맛보게 해준 가게죠”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타이를 시작으로 마이홍, 마이치치스, 마이첼시 등 이태원을 기반으로 홍석천이 외식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후부터 그에게 ‘이태원의 전설’ ‘이태원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는데요. 시간이 흘러 현재 홍석천은 스스로를 “한때는 이태원의 황태자, 지금은 이태원에서 쫓겨난 황태자”라고 소개합니다. 동업자의 사기, 건강상의 이유, 최저임금 상승 등 자영업자로서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던 그도 코로나19 한파를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죠.
홍석천은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에 마지막까지 운영 중이던 마이첼시의 폐업소식을 직접 알렸습니다. 그는 “금융위기·메르스 등 위기란 위기를 다 이겨내 왔는데 이놈의 코로나19 앞에서는 저 역시 버티기가 힘들다”면서 “나의 30·40대를 오로지 이곳에서만 보냈는데 이젠 좀 쉴 때가 된 것 같다”고 적었는데요.
마이첼시가 폐업함으로써 이태원에 홍석천의 식당이 한 군데도 남지 않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태원 인근의 상인들은 ‘고생했다, 당신은 이태원 전설이다’라는 현수막을 걸어주기도 했죠. 이에 대해 홍석천은 “분명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기에 폐업을 준비하면서도 울지 않았지만, 현수막을 보고는 정말 눈물이 났다”라고 전했습니다.
코로나19로 사업장을 접어야만 했던 연예인은 홍석천뿐만이 아닌데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오정연도 올해 초 운영하던 카페의 폐업소식을 알려왔습니다. 그녀는 "코로나로 닥친 어려움을 감수하며 애정으로 버텨오다 임대 재계약 시점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변곡점이 돼 폐업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며 카페의 간판을 내릴 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고 전했는데요.
배우 박정민은 이달 2019년 7월경부터 운영 중이던 책방의 폐업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책방 운영에 있어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다”라며 “여러모로 해결책을 모색해봤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 이외에도 그룹 클론 출신 강원래, 배우 이종석, 코미디언 강재준·이은형 부부도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장 문을 닫았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속이 타들어 가는 소상공인의 속마음을 증명하듯 현재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는데요.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자영업 특성별 고용현황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1명 이상의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10%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달이 월급을 줘야 하는 직원을 둔 자영업자에게 고용 충격이 집중된 것인데, 해당 수치는 IMF 당시와 유사하다고 하는데요. 한은 관계자는 “인건비, 임차료 같은 고정비 비중이 높아 불확실성이 큰 팬데믹 경기침체기에 자영업자들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시국에 폐업을 할 수 있는 것도 부럽다”라는 목소리도 나오는데요. 실제로 많은 자영업자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지난해 숙박·음식업 폐업률은 0.72%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0.79%) 보다 오히려 0.07%p 줄었습니다.
이를 두고 경제 분석 전문가는 “숙박·요식업의 자영업 감소가 예상보다 낮은 것은 상황이 좋았기 때문이라곤 보기 어렵다”라며 “요식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업자금이 많이 들고, 권리금 회수가 힘들어 폐업하지 못하고 버티기에 들어간 자영업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여파가 이렇게까지 길게 이어질 줄 몰랐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앞으로 백신 보급률이 높아짐에 따라 경기가 안정화 될 시 자영업자들이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