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개그맨 박수홍은 그간 꾸준히 방송활동을 이어오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최근 박수홍이 전 소속사 대표였던 친형으로부터 최소 50억 원에 달하는 정산금을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해당 소식을 전해 들은 네티즌들은 “어떻게 가족이 가족에게 그럴 수 있느냐”, “당장 돈 돌려줘라”등의 반응을 보였는데요. 그런데 박수홍의 주장처럼 친형이 그에게 출연료 등을 미지급했다 할지라도 이 행위에 대해 잘못을 물을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되던 시기부터 줄곧 이어진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중인 친족 등이 사기·횡령 등의 재산과 관련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잘못을 묻지 않는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법안은 본래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아무리 법이라 할지언정 내밀한 가정사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정신이 반영된 것인데요. 예컨대 어린 시절 자녀가 치기 어린 마음에 부모님의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 썼을 경우, 원칙적으론 절도에 해당하지만 친족상도례에 따르면, ‘공소죄 없음’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죠.
현재 박수홍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전 소속사 대표인 그의 친형은 법인을 세우고 박수홍이 방송을 통해 벌어들이는 출연료 등을 관리해왔는데요. 그러나 친형은 박수홍에게 정산을 제때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법인의 재산을 개인 재산인 것처럼 개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무단으로 인출해왔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박수홍은 지난 4월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횡령 혐의로 친형 내외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소한 상태인데요.
박수홍의 주장이 전부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친형은 친족상도례가 현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선 해당 사안의 경우 피해자를 박수홍을 볼지, 법인으로 볼지에 따라 판결 내용이 갈릴 수 있는데요.
우선 피해자를 박수홍으로 가정했을 경우에 대해 알아봅시다. 만일 그의 형이 ‘출연료를 내게 맡기면 추후 너에게 정산해 주겠다’라고 하면서 사적 이득을 취했다면 이는 사기죄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이때 친족상도례가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요.친족상도례에 관한 법인 형법 제328조 1항에는 앞서 말했듯 재산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직계가족은 형을 면제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1항과 이어지는 2항에서는 범죄가 일어난 지 6개월 이내에 피해자가 피의자를 고소했어야만 수사관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박수홍 씨의 주장에 따르면 피해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시기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만큼 ‘피해 시점 6개월 이내’라는 원칙을 고려해 고소를 진행하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법인으로 봤을 시엔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피해자를 법인으로 설정했을 시 결과를 법정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가 보다 쉬운데요. 그 이유는 법인은 박수홍의 친형과 친족관계에 있지 않아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아도 됨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피해자를 법인으로 특정했을 시 친형이 저지른 범죄는 사기죄가 아닌 횡령죄에 해당하는 데요.
일반 횡령죄의 경우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5년 이하의 징역 정도의 선고를 받게 되지만, 박수홍 씨의 주장에 따라 그의 친형이 50억 원이 넘는 이득액을 취했을 경우 ‘특정 경제 범죄법’에 따라 5년 이상의 징역 등으로 가중처벌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해당 사안과 관련해 한 변호사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관계로 피해 액수를 정확하게 특정할 순 없지만 피해 금액이 50억 원 이상이라면 이 금액이 반환되지 않는 이상 그의 친형은 실형 선고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는데요.
이번 박수홍씨가 촉발한 친족상도례 논란을 계기로 이참에 이 법안을 폐지하자는 움직임도 꿈틀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달 6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변화된 국민 인식에 따라 친족상도례 조항을 개정 또는 검토할 때”라는 보도자료를 냈는데요.
이성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친족상도례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의원은 “박수홍 씨 사건으로 친족상도례가 악용되는 사례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라며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더라도 장애인을 대상으로 경제적 착취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가운데 19.2%가 가족 및 친인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의원이 짚은 것처럼 장애인 경제 착취 범죄 가운데 5건 중 1건이 가족 및 친인척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데요. 예컨대 올해 1월에는 형이 지병으로 쓰러진 뒤, 동생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형의 아내에게 재산 관리를 해주겠다며 접근해 그녀가 살던 아파트까지 팔아버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 권익옹호기관 관계자는 “친족상도례로 인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형이 면제되는 일이 일어나다 보니 피해자는 재판에서 진술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라며 “장애인을 경제적 착취 도구로 생각한 이에게는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게 아니라 더 강력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편, 친족상도례가 폐지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을지언정 완전한 폐지 단계로 가기엔 아직 멀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오래도록 이어져온 법인만큼 국회에서도 법 개정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지금껏 이어져 온 법안을 일부 안 좋은 사례 때문에 바꾸게 되면 가족관계 파탄 등 전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우려했는데요.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친족상도례가 폐지되면 국가가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너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박수홍 씨의 출연료 미지급 논란과 그로 인해 촉발된 친족상도례 폐지 논란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여러분들은 가족 일은 국가가 최대한 간섭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친족상도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