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인 만큼 기업과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한데요.
국내 대기업 노조 가운데서도 현대차 노조는 강성노조로 손에 꼽힙니다. 이들 노조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 직전까지 정년을 늘려달라는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요구안을 들고 나와 종종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하죠. 이밖에 현대차 노조의 경우 사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파업 카드’를 꺼내 들기도 하는데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협약(임단협)‘에 역시 노사 측은 첨예한 갈등을 빚었지만, 극적으로 잠정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노조가 파업 카드를 던져버리고 협상 의자에 앉도록 하기 위해 현대차는 그들에게 무엇을 제시했을까요?
지난 20일 현대차 노조는 울산공장에서 오후 2시부터 진행된 8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사측과 잠정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연속 파업 없이 잠정 합의안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인데요.
노조가 동의한 사측의 제시안에는 기본금 7만5천원 인상, 주식 5주, 품질향상 격려금 230만원, 성과금 200%+350만원 등이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측 교섭 위원이 “회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끌어모아 마련한 제시안”이라고 말할 정도로 동종업계 대비 파격적인 대우라고 볼 수 있죠.
제시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기본급 인상 폭은 8만5천원이었던 2015년, 성과급 및 격려금은 870만원이었던 2014년 이후 최대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를 모두 더하면 1806만원에 달합니다. 본래 지난달 사측이 먼저 제시했던 총액 기준이 1114만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사측의 본래 의도보다 기본금 및 성과급의 인상 폭이 약 62%나 증가한 것이죠. 이로써 상당수 현대차 생산직원은 연봉 1억원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데요.
다만, 사측은 해고자 복직과 정년을 최대 만 64세까지 연장하라는 노조 측의 요구는 끝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인사권, 경영권이라는 회사의 고유한 업무 영역을 노조가 침해하는 요구라고 봤기 때문죠. 대신 시니어촉탁직 임금을 인상하고 정년퇴직 희망자 가운데 재고용을 늘리는 대안이 합의안에 포함됐는데요. 시니어촉탁직이란 정년을 맞이한 60세 근로자가 계약직 신분으로 1년 더 일할 수 있는 현대차에서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이와 관련해 대전 소재의 모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정년을 연장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청년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등 사회 구성원들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라며 “노조는 정년 연장 카드는 버렸지만, 결과적으론 더 많은 것을 얻어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는데요.
현대차가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을 노조에 제시한 것은 노조 대다수를 차지하는 4050 생산직뿐만 아니라 사무·연구직을 담당하는 2030세대 역시 사측에 대한 불만이 커졌기 때문인데요.
교섭에 참석한 사측 대표는 “현대차 내부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어 두 세대를 모두 챙기는 합의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6월 현대차그룹 신입사원들이 잇따라 퇴사한 후 삼성전자 신입 공채에서 최종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현대차 소속 한 직원은 “노조에서 MZ세대들이 원하는 성과급 대신 정년 연장만 주야장천 주장하고 있으니 대졸 사무직들은 ’절이 싫으니까 중이 떠난다‘는 심정으로 탈현대차 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편, 진통 끝에 나온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을 끌어내 최종 합의에 다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데요. 회사 실적이 날로 좋아지는 상황에서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내부 의견이 있는데다 MZ 세대 직원들 사이에선 ‘여전히 성과급 인상보단 고용안정에 방점이 찍혀있다’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노조는 작년에도 잠정합의안을 52.8%의 찬성률로 턱걸이로 통과시킨 바 있는데요. 올해 최종 찬반 투표는 오는 27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과연 현대차 노사가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겨우 마련한 잠정 합의안이니만큼, 내달 첫주로 예고된 여름휴가 전까지 최종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