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정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평가받는 공무원은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데요.
워낙 경쟁률이 치열하다 보니 한두 문제 차이로 필기시험에서 당락이 나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이때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공무원 직함을 달고 일 할 수 있는 직종이 있다고 하는데요.
자격증 하나만 있으면 최소 지원자격 요건을 웬만큼 충족시키다 보니 공무원을 희망하는 청년 사이에서는 아예 이 직종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공무원 필기시험 프리패스 증으로 통하는 이 자격증의 정체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 사이에서 속기사가 유망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속기사는 음성이나 영상의 내용을 빠르게 문자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회의록을 비롯해 각종 보고서 등 기록물에 대한 중요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속기사를 필요로 하는 수요처가 증가하고 있는데요.
예컨대 행정 체계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속기록 작성을 의무화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대한 법률안’에 따라 속기공무원들은 필수적인 존재가 됐습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법원 속기사 공무원으로 선발된 인원만 64명을 넘어서는데요. 9급에 해당하는 법원 속기사의 경우 속기사 자격증 2급 이상만 취득하면, 별도의 필기, 실기 시험을 치르지 않고 오로지 면접으로만 당락이 결정 납니다. 본래 9급 법원 공무원 채용 시 지원자들은 8과목의 필기시험을 쳐야 하지만 속기 직렬은 필기시험 단계를 건너뛸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속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어느 정도로 실력을 갖춰야 할까요? 속기사 자격증은 1급, 2급, 3급 총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요. 과목은 연설체, 논설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제 시험은 등급에 따라 최소 1200자에서 1650자 분량의 낭독파일을 듣고 90% 이상의 정확도로 타자를 쳐내면 합격이죠.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해당 시험은 1년에 총 2번 치러지는데요. 올해는 지난 3월에 한 번 치러졌으며, 다음 시험은 오는 9월 치러질 예정이며 접수는 8월 19일부터 받고 있습니다.
다만,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있어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일반 키보드가 아닌 세벌식 자판으로 개발된 속기사용 키보드로만 시험을 쳐야 한다는 것인데요. 속기사용 키보드는 평균 300만원 안팎이라 속기사 지망생들이 가장 크게 부담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속기사용 키보드를 마련한 뒤, 연습에 매진해 속기사 자격증을 손에 거머쥐게 된다면 이제 어느 곳으로 취업할지 고민하면 되는데요. 공공기관 먼저 살펴보자면, 앞서 언급한 법원 속기사를 비롯해 검찰 속기사는 별도의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오직 면접을 통해 취업이 가능합니다. 이외 국회 속기사와 의회 속기사의 경우 국어, 영어, 한국사 등 별도의 필기시험을 거쳐야 하죠.
지방의회에서 속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A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우연히 속기 직렬을 알게 돼 2년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라며 “시험을 준비할 당시에는 당장 300만원의 고가 키보드를 사야 한다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현재의 역사를 기록하는 ‘현대판 사관’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일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속기 직렬 공무원들의 연봉은 어떻게 될까요? 우선 법원 속기사의 경우 9급 기준으로 기본급 200만원 안팎이며, 국회 및 의회 소속 속기사는 각종 수당을 제외하면 최소 170만원 수준입니다. 여기서 다른 공무원 직렬과 마찬가지로 호봉이 올라갈수록 연봉은 자연스레 오르는데요.
현재 검찰의 경우 7급 상당의 속기 공무원을 매년 380여명 정도 꾸준히 채용하고 있는데요. 검찰 소속 속기사는 실수령액 220만원 안팎을 받고 있으며 7급 공무원과 동일한 처우를 받기 때문에 격려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경찰청에서 일하는 속기사의 월급은 200만원 이상으로 책정되는데요. 한 명의 속기사가 한 달에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수는대략 20~30건 사이를 오가며 사건의 건수가 올라갈 때마다 추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부업을 위해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5년 차 방송작가인 박모 씨는 200만원에서 오를 기미가 없는 월급명세서를 들여다보다 부업으로 속기사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녀는 “평소 타자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고, 퇴근 후 혼자서 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을만한 직업 같아서 도전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박 씨는 본격적으로 속기사용 키보드를 구매한 뒤 6개월이 지났을 시점 속기사 2급 자격증을 따게 됐는데요. 개인 속기 사무소나 방송국에서 일을 받아 하면서 그녀는 매달 60만원 안팎의 부수입을 올리게 됐습니다.
다만, 프리랜서 속기사로 일하면 정산 날 정리는 필수라고 하는데요. 박 씨는 “파일을 넘긴 뒤 파로 정산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속기사마다 방송국마다 정산해주는 날짜가 달라서 나도 모르는 새 돈이 떼일 수 있다”라며 “애초 일을 받을 때부터 정확한 정산 날짜를 못 박아 두고 이를 기록하는 게 필수적이다”라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대한속기협회가 규정하는 속기요금 기본료는 녹음파일 1시간당 35만원 수준인데요. 업계 전문가들은 “검찰, 법원, 경찰 등에선 피의자나 참고인을 조사할 때 주요 내용을 모두 녹화해야 하는 영상녹화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문서화하는 속기사의 필요성은 향후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라며 “청각장애인들의 TV 시청을 위해서 한글 자막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속기사들의 고용은 향후 더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속기사 자격증과 속기사에 대한 내용 전반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필기시험을 안 치고 공무원 직함을 달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지만 300만원에 달하는 키보드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속기사 자격증에 도전하기 전 신중한 고민이 필수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