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눈길이 간 제품이 있었나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한 제품이 있으셨나요? 세상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물건은 없습니다. 펜 하나를 만들 때도 수많은 공정과 문서 작업을 거친 후에 만들어집니다. 이번 시리즈에선 저마다의 노력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롯데칠성 최초의 고졸 공채 입사자
지점장 제안 뿌리치고, 사업가로 탈바꿈
욕실용품으로 연 매출 100억 원 달성
‘개천에서 용 난다.’ 흔히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을 뜻한다. 이번 인터뷰이도 비슷한 경우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젊음과 자신감을 내세워 대기업에 당당히 공채로 걸어들어갔다. 직장 생활을 이어오며 여러 문제를 마주했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의 행보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연 매출 100억 원 규모의 사업체를 이끄는 대표 위치에 올라섰다.
그가 주목한 사업 아이템은 바로 변기다. 귀찮다는 이유로 그간 변기 청소를 등한시했던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편리함을 선사했고, 사업을 순항 시키고 있는 중이다. 10년 넘게 욕실 용품 전문 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양변기 부품을 제조하다 기존 변기 세정제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든 제품이 비즈니스 방향성을 다시 세우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매번 새로운 결단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제이원프라임의 서영길 대표를 만났다.
◇ 고졸 출신 영업왕, 지점장 제안받아
김포에 있는 농협과 마트에는 서영길 대표의 손, 발이 안 닿은 곳이 없다. 7년간 롯데칠성 영업사원으로 지냈던 그는 김포 유통 업체 중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직접 몸을 움직여가며 분주히 일한 결과, 1,000개가 넘는 영업점 중 3년 내내 ‘판매왕’을 달성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으로 롯데칠성 공채로 입사한 건 아마 당시 최초였을 겁니다. 어쩌면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먼저 할 수 있지만, 저는 ‘누구보다 실력은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7년을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공을 인정받아 팀장에 이어 지점장 자리까지 제안받았다.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기쁜 마음보다는 고민이 먼저 생겼다. 지점장이 된다는 건 곧 퇴직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제 미래를 상상하다 보니, 회사에 기여하거나 오랜 시간 머물 공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간 쉴 틈 없이 달렸던 저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했나요?
“기업에서 정해주는 상품만을 판매해야 했습니다. 매뉴얼을 따르며 영업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도 많았죠. 저는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면 찾게 될 거라고 말이죠. 이때 눈에 띈 곳이 욕실이었습니다.” 서 대표는 그동안 대기업 프로세스 속에서 기업 중심의 제품을 팔아오며, 소비자의 니즈를 채워주지 못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아이템을 설계한다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왜 하필 욕실이었나요?
“막 퇴사를 했던 1997년은 아직 우리나라에 욕실 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욕실’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받아들여지고 있던 시기이기에,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초기 자본에도 적합했습니다. 훗날 유관 사업으로 확장할 수도 있었죠. 그야말로 초기 사업자에게 적합한 모델이었습니다."
퇴직금 3,700만 원을 챙겨들고 집을 팔았다. 모은 돈으로 무작정 김포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좋은 직장과 집을 떠나고 욕실용품이라는 불확실한 시장으로 향하는 그를 말리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젊음을 무기로 마음이 가는 길을 따르기로 정했다. “핸드폰도 만드는 나라에서 ‘가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할까?’라는 패기가 있었습니다. 원자재상과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공부해나간 게 지금의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됐습니다.”
서영길 대표는 욕실용 장식장으로 국내 욕실용품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나갔다. 욕실용 장식장은 아직도 월 매출의 10억 원을 꾸준히 채울 만큼 제이원프라임의 효자 상품이 됐다. 그러나 단일 상품으로만 사업을 끌고 나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욕실용 가구의 경우,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 부피도 커 배송과 설치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한계를 마주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였습니다.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니, 사업에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욕실용 가구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집어가며 이와 반대되는 제품이 뭘까 고민했습니다. 소비자에게 맞추는 디자인이 아닌, 하나의 기준이 되는 제품을 생산하면 사업의 지속성이 높아질 거라는 결론이 났죠.”
서영길 대표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업적 한계를 마주하자, 회사에서 기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가 첫 사회생활에서 대기업 프로세스를 통해 배웠던 회사 중심의 제품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서 대표는 빡빡한 매뉴얼에 질렸지만, 결국 그 일을 하며 배웠던 경험들이 사업의 자양분이 되는 순간이었다.
“2008년부터는 화장실용 액세서리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남성용 변기에 있는 센서, 양변기 부속품 등 업계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으니 매출도 확연히 올랐습니다. 기존 7~80억 원이었던 연간 매출액이 한순간 1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소변기 센서의 경우 국내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양변기 부속품은 40%를 웃돌 만큼 큰 축을 맡고 있습니다. ”
◇ 우연히 발견한 문제로 개발 결심해
사업이 순항을 이루던 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양변기 부속품이 빠르게 부식되고 있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온 것. 변기 세정제가 부속품의 수명을 깎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기 세정제는 강한 산성을 이용해 세균을 없애는데, 이때 물탱크 속에 고여있는 물로 인해 양변기 부품들의 부식이 진행되곤 한다. 물통 속이 파랗게 물들어 지저분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로 인해 누수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외에 변수도 많았다. 강한 세정 효과를 얻고자 세정제를 두 개씩 사용하는 소비자도 많았다. 그러나 세정제의 항균력이 자연적으로 방사되면서 환경 오염을 일으킬 수 있었다. 또한, 물을 내리는 과정에서 세정제가 튄다면 피부에 해가 되기도 했다. 세정제 하나로 발생하는 복합적인 상황들을 보니 직접 세정제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해당 세정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물탱크에 직접 세정제를 녹이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을 내릴 때만 세정제가 배출된다면 양변기 부속품 결함이나 착색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죠. 이 기술을 고안해내기 위해 무려 1년간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총 4개의 디자인 특허가 나왔는데, 실제로 제품에 적용된 건 한 개뿐이죠.
기존 세정제로 인한 부식 문제는 디자인으로 해결했다. 물탱크 내부에 배치해두던 기존 세정제와는 달리, 포켓형으로 디자인된 세정제는 파이프에 직접 설치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물탱크 부품을 부식시키는 경우를 줄일 수 있었고, 사용량 또한 조절할 수 있었다.
세정제의 산성도 가능한 최소한으로 조절했습니다. 배변이 자연 분해되기 위해서는 유기 물질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요. 기존 세정제의 경우 항균력이 99%로, 활성 유기물을 모두 없애 배변을 그냥 폐기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세균과 유기물을 죽일 만큼 엄청난 독성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부분을 고려해 항균력을 88.9%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균은 모두 말끔히 사라지게 하면서도 변 속 유기물은 살 수 있도록 도와줘 환경 오염에서 벗어나게 한 거죠.”
항균력이 낮다는 점에서 소비자가 망설이진 않았나요?
“아무래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세정제가 다 비슷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항균력이 88.9%밖에 되지 않으니, 다른 제품보다 ‘떨어진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죠. 변기 세정제가 출시된 초반에는 항균력을 낮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간 욕실장 가구, 양변기 부속품 등을 생산해왔기에 소비자들과 직접 마주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래서 변기 세정제가 출시되었을 때는 홍보나 판매 방식을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나, 대리점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편한 길만 선택할 수는 없었다.
“오프라인 대리점은 실질적으로 온라인 판매에 취약한 편입니다. 제품 하나 알리겠다고 자체 온라인몰을 오픈하게 되면, 그간 대리점과 맺어온 인연을 스스로 끊는 것과 마찬가지였죠. 대리점의 온라인몰에 집중하되,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상품 문의 전화번호는 모두 본사 쪽으로 변경했습니다. 대리점과의 거래와 소비자와의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 고객 목소리에서 찾은 기회, 서비스 만족 대상까지
출시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변기 부속품을 판매할 때 변기 세정제가 사은품으로 딸려 나가다 보니, 제품을 한 번 사용해본 소지자들의 재구매율도 매우 높다. 온라인을 통해 세정제 판매량이 출시 5개월 만에 10만 개를 넘었다. 기세를 몰아 소변기용 세정제 개발도 뛰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무실 반경 10km 이내에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렌탈 사업을 시도해본 결과, 모두 ‘화장실 냄새가 사라졌다’는 소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세정제가 출시된 지 1년 만에 2020 소비자 서비스 만족 대상에서 대상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편의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연구 개발을 진행한 덕에 소비자의 컴플레인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소비자 덕에 시작한 제품이 소비자를 위해 돌려주는 행보도 보였다. 사회 공헌활동도 활발히 진행했던 것이다. 2019년 김포시에서 진행됐던 제24회 김포시 중소기업 대상에서 ‘노사화합, 고용 창출’ 분야에 선정돼 수상하기도 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서 대표는 그 인기를 벗 삼아 렌탈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 밝혔다.
렌탈 사업의 가능성은 어떻게 발견했나요?
“현재 국내에는 양변기가 약 2억 8,000여 개 정도 분포해 있습니다. 이를 단순히 숫자로 계산하면 한 달에 약 1,000개 정도의 세정제를 판매할 수 있는 수준인데요. 어떻게 보면 작은 규모이긴 하나, 렌탈 사업으로 작게나마 영업이 가능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월 3,000원~4,000원 정도로 주기적으로 세정제를 교환해 주고, 동시에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컨설팅까지 해준다면 제이원프라임 같은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고요. 저희를 시작으로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렌탈 사업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듯합니다.
“사업을 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직장 생활 7년 후 무작정 뛰어든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업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상황을 함께 이겨내는 데 관심이 생겼습니다. 오랜 시간 회사를 운영해 온 사람으로서 일종의 책임감도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토대를 만들어 제가 없어도 누구나 회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시장에 제 이름을 새기기보다는 제이원프라임이라는 여섯 글자를 알리는 것이 진정한 사업가의 덕목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는 굉장히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학비가 없어 대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입사 당시 롯데칠성 최초로 고졸 공채에 합격할 만큼 열심히 살았습니다. 물론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세 ‘못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배움이나 지식을 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이 탄탄하다면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로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젊음은 럭비공과 같으니, 어디든 튀어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