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다른 병원의 진료에 대해
말을 아끼는 이유
세상에 의사는 많고, 병원도 많습니다. 몸의 어딘가 이상신호를 보내오면 일단은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을 찾지만, 딱히 호전이 없으면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죠. 이 병원을 계속 다녀야 할까, 다른 동네 병원을 찾아봐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 분야의 권위자로 소문난 교수님이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이가 아플 때는 갈등이 더 심해집니다. 일단 치과에 가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지니까요. 치과 의자 주위로 세팅된 치료 도구들만 봐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분, 한 번 방문에 몇백만 원이 나올지 몰라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며 병을 키운다는 분 등, 치과 치료와 과잉 진료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출처: SBS 미운 우리새끼
지난해 한 치과의사는 치과에서 자주 하는 과잉진료에 대한 내용을 유튜브로 공유하며 치과 환자들의 환호와 치과 업계의 원성을 동시에 듣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증상을 가진 환자에게 이러한 처방을 하는 것은 과잉진료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는 게 대다수 치과의사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죠. 그렇다면 일률적인 기준으로 진료의 잘잘못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 다른 치과의사의 진료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디테일은 담당의만 안다
우리 얼굴의 생김새가 다 다르듯, 각자의 신체 구조와 건강 상태도 조금씩 다릅니다. 연령대나 성별 등 개인을 범주화할 수 있는 기준은 있지만, 그게 모든 걸 다 설명해 주지는 않죠. 환자의 질환·치료 이력도 모두 다르고, 복용하고 있는 약의 여부에 따라서도 상황은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에게 모두 같은 약이나 치료를 처방할 수는 없습니다.
출처: 건치신문 / 오마이뉴스
이렇게 제각각인 환자의 특성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담당의입니다. 치과라고 예외는 아니겠죠. 다른 의사가 보기에는 비일반적인 치료이지만, 담당의가 판단하기에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보통의 경우보다 진료비가 조금 더 드는 치료를 선택했다고 해서 '과잉 진료'라거나 '잘못된 치료'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여서는 안되는 이유기도 하죠.
모든 분야가 전문 분야일 수는 없다
출처: 한국일보
'치과'를 단순히 치아와 관련된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면 굉장히 좁은 범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치과의사라면 치아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죠. 하지만 .서울대학교병원의 정의에 따르면 치과는 '치아와 그 주위 조직 및 구강을 포함한 악안면 영역의 질병이나 비정상적 상태 등을 예방하고 진단하며 치료를 도모하는 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것보다 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네요.
다 같은 치과치료 같지만 신경치료, 사랑니 발치, 보철, 임플란트, 교정 등 치과 내에도 다양한 분야가 존재합니다. 현직 치과의사의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이론으로 진료에 대해 배울 때는 그 모든 걸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실제 진료에 뛰어들어 보면 이 모든 것을 같은 수준으로 완벽하게 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합니다. 남들보다 다양한 분야에 고루 숙련도를 갖춘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각자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고요.
다른 치과의사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한 내용에 대해 비판할 때는 그가 어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사례연구를 통해 그러한 판단을 내렸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내 환자가 우선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공신력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치과의사도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직업인입니다. 대의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만나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이죠. 다른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치료했는지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자신의 환자에게 집중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남의 치료를 비판하기 전에 내 진료는 적절했는지, 치료는 환자의 상태에 적합했는지 돌아보는 게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겠죠.
매장당하기 쉬운 구조
치과의사들은 대학에서부터 폐쇄적인 구조를 경험합니다. 입학 후 첫 2년, 그러니까 예과 때는 교양과목도 듣고 다른 대학생들과 섞이지만, 본과에서는 4년 내내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하죠. 졸업 후 진로도 병원을 개업하거나 개인병원의 페이 닥터가 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업계 자체가 좁고 모두의 이해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누군가 한사람 조금 다른 행동을 하면 눈에 띄기도 쉽고, 그 행동이 모두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 때에는 어마어마한 압력 아래에 놓이기도 하죠.
출처: 치의신보
과잉진료를 폭로하는 치과의사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환자 진료에만 매진하는 치과의사도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와 조금 다른 치료를 하면 " 왜 다르게 하냐"며 비판을 받기 쉽고, 과잉 진료 행태에 대해 지적하면 "왜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발언을 하냐"며 뭇매를 맞게 됩니다.
진료가격을 마음대로 정하지도 못하죠. 치과 담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책 <임플란트 전쟁>의 저자이자 치과의사인 고광욱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페이닥터로 일하던 그가 치과를 개원하고 진료비를 싸게 받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왔다는데요. 진료비를 싸게 하는 게 범법행위도 아니고 누가 제재를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괴롭힘을 심하게 당했답니다.
출처: 덴탈 포커스
'치과의사'라고 하면 의사라는 명예와 넉넉한 수입을 모두 갖췄다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때문에 치과의사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동시에, 쉽게 질투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잘못된 점이 있으면 비판하고 개선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제기하려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모든 일을 다 알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겸손도 필요하겠죠. 기득권 싸움이나 금전적 이득보다는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이 무엇인지'를 가장 먼저 고민하는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