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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축구 감독은 누구일까요?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축구팀에게 로또 1등과도 같은 환희를 전해준 남자, 히딩크 감독님이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히딩크 감독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네덜란드 축구선수 출신인 축구 감독, 히딩크는 선수시절 때보다 감독이 된 이후에 훨씬 빛을 발한 케이스인데요. 종종 이런 경우가 있긴 하나 히딩크 감독의 경우는 처음부터 프로선수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목표로 했기에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축구실력도 출중했기에 선수로서의 경험도 쌓게 된 것인데요. 비록 선수로서는 눈에 띄는 기량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지금의 히딩크 감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독으로서는 맡는 팀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온 전적이 화려한데요. 한국 2002월드컵 4강진출, 호주 2006월드컵 16강진출, 러시아 2008유로 4강진출 등 히딩크 감독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두고 '히딩크 매직'이라 부른다 하는데요. 히딩크 감독은 유럽에서도 "약팀을 강하게 조련하는 기술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히딩크는 현역 선수 은퇴 후, 1982년 데 그라프샤프에서 수석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는데요. 히딩크는 1987-88시즌에서 'PSV 아인트호벤'의 정식감독이 되자마자 에레디비시, KNVB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함으로써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한 것으로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1984년 'PSV 아인트호벤' 수석코치로 부임된 것을 인연으로 1986-87 시즌 도중에 감독이 선수들과의 불화로 해임되자 감독 대행을 바로 맡게 되었는데요. 당 시즌에 바로 리그 우승을 이뤄냈죠. 이 리그 우승 덕분에 감독 대행에서 바로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게 됩니다. 지도자로서 굉장히 빠른 상승세를 보여준 셈인데요. 운이 따른 경향도 있지만 그만큼 탁월한 지도자였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 실력발휘를 한 것이겠죠? 

▼그렇게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100년이 훨씬 넘는 축구 역사에서 유러피언 트레블을 이룬 여덟명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등극해버린 히딩크 감독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슬럼프 시기가 있었는데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오기 전이 바로 그에게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는 초반의 활약상과 달리 1998년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해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런 히딩크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 함께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팀은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월드컵 4강 진출이란 성과를 이룩해냈으며 동시에 히딩크 본인도 감독으로서의 건재함을 재증명했습니다. 그에게도 대한민국 축구팀의 월드컵 4강진출은 인생역전의 순간이었을텐데요. 


▼이 후, 그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16강 진출조차 어려워보였던 대한민국 축구팀을 4위에 올려놓은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는데요. 늘 자신감이 넘쳤던 히딩크 감독이지만 이처럼 엄청난 결과에 그자신도 상당히 놀랐을 거라 생각됩니다. 히딩크는 이와 같은 업적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 국민이 되었으며 KFA 명예의 전당 최초의 7인 중 1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환대를 받는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시행착오의 과정에서는 어마어마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는데요. 더욱이 월드컵 개최국의 명예가 달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도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그 때에 알게 될 것이다."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된다."는 무한한 자신감을 표출했었습니다. 

▼특히, 16강진출을 목표로 하는 여론 앞에서도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16강은 나의 바람이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며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었죠. 당시엔 조별 예선이나 통과하라는 조롱을 받아야했던 발언이었지만 정말로 16강을 넘어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명언과 함께 4강 진출에까지 성공하자 그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또다른 업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박지성 선수의 발견'인데요. 당시 아무런 기대도 받지 못하던 박지성 선수는 히딩크호에서 최종 엔트리에 합류하여 월드컵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또다른 축구영웅으로 불리우죠. 박지성 선수 본인에겐 히딩크감독은 축구인생의 은인이었던 셈인데요. 박지성 선수는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히딩크 감독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했는데요. 항상 히딩크 감독을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오고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뿐만이 아니라 월드컵 4강신화를 함께 한 선수라면 누구나 히딩크 감독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일텐데요. 특히나 최진철 선수의 경우 "히딩크 감독님은 내 인생의 로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으신 분"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 후, 히딩크 감독도 내리막길 감독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호주와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기적을 만들어냈죠. 가장 최근 그의 업적으로는 2015-16 시즌 첼시 FC에서 임시 감독으로 팀을 잘 이끌어준 것을 꼽을 수 있는데요. 무리뉴 감독의 경질 이 후, 급히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키고 안토니오 콘테에게 안정적으로 바톤을 넘겼는데요. 당시 첼시 FC은 강등 위기라고 점쳐졌을 정도로 비관적인 상황이었지만 히딩크 감독이 이를 잘 수습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15-16 시즌 이후부터는 첼시에서 유망주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딩크 감독은 공석인 레스터시티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히딩크 매직'을 기대하고 그에게 감독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간접적으로 거부하면서 레스터시티행을 택하지 않았는데요. 히딩크 감독은 "30년에 이르는 감독 경력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고 하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로또와 같은 환희를 안겨주었던 남자가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아쉬운 심정도 들긴 하나, 그의 바람대로 명예로운 마무리를 할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