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삼성은 4대 미래 성장사업을 발표했습니다. 인공지능과 5G, 바이오 그리고 반도체 중심의 전장부품이 그 주인공이었죠. 그중에서도 전장부품은 자율 주행, 커넥티드 카 시대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인데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이 발표가 있기 전인 2016년 말, 전장부품 사업을 키우기 위한 첫 발을 이미 내디뎠습니다. 미국의 오디오 전문 그룹인 '하만 인터내셔널 인더스트리'를 무려 9조 4천억 원에 인수한 것이죠.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직에 오르자마자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지, 또 3년이 흐른 지금 하만의 성적표는 어떠한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카오디오, 전장부품 분야의 강자
삼성의 하만 인수는 2016년 11월 14일에 시작되어 2017년 3월 완료되었습니다. 무려 80억 달러, 한화로 9조 4천억 원에 이르는 이 인수는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 사례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죠. 2016년 9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가 된 직후의 일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자마자 과감히 사들인 하만은 미국의 오디오 전문 그룹입니다. 1956년 시드니 하만이 세운 이 회사는 JBL, 하만카돈, 마크 레빈슨, AKG 등 오디오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죠. 또한 카오디오 분야에서는 뱅앤올룹슨과 바우어 앤 윌킨스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오디오 브랜드는 아우디, BMW, 벤츠, 페라리, 도요타 등 자동차 브랜드의 상위 모델에 적용되고 있으며, 카오디오 시장에서 하만의 점유율은 41%에 육박합니다.
오디오 브랜드만 보유한 기업이었다면 삼성이 이렇게 거금을 주고 인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만은 전장부품 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2015년 말 하만의 연 매출 70억 달러(약 8조 2천억 원) 중 65%가 전장사업 분야에서 발생되었죠. 하만은 이 외에도 인포테인먼트 (정보+오락), 차량용 텔레매틱스(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 자동차용 보안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높은 전장부품 시장 진출에 진출하려는 삼성에게 하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삼성과 하만의 시너지
강력한 오디오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기업을 인수했으니, 당연히 하만의 오디오가 삼성의 다양한 제품군에 적용되었습니다. 갤럭시 S, 노트 시리즈의 번들 이어폰은 하만 사의 AKG로 변경되었고 삼성전자 노트북과 갤럭시 폴드에도 AKG 스피커가 탑재되었죠.
삼성전자의 IT 기술과 하만의 전장 부품 기술은 함께 '디지털 콕핏'을 탄생시킵니다. 디지털 콕핏은 계기판과 오디오, 조수석의 차량 편의 기능을 디지털화해 만든 장치인데요. 올해 발표한 2세대에서는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 싱스와 인공지능 뉴 빅스비를 통해 차량 내외부의 기기 간 연결성을 강화했고, 운전 환경 정보를 더욱 간결하게 제공하는 등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만과의 합작으로 탄생한 디지털 콕핏은 삼성 디스플레이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스마트폰용 중소형 OLED 기술에 집중하던 삼성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이 당분간 지연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신사업 분야를 개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디지털 콕핏에 자사의 OLED 제품을 대거 적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계기판 뿐 아니라 뒷좌석 모니터에도 12.4형 OLED 디스플레이가 탑재되었죠.
올 2분기 실적 인수 후 최고치
삼성전자의 인수 이후 하락세를 그리던 하만의 실적은 올 들어 반등 중이다 ㅣ 출처 thebell
인수 후 하만의 영업이익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영업권 상각으로 비용이 늘어난 결과 이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인데요. 인수가 완료된 2017년의 영업이익은 574억 원, 2018년의 영업이익은 1617억 원으로, 인수 이전인 2015년의 4억 9570만 달러(약 5,800억 원), 2016년의 6억 1430만 달러 (약 7,222억 원)에 비하면 크게 하락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실적은 차츰 개선되고 있습니다. 올 2분기 하만은 매출 2조 5,200억 원, 영업이익 900억 원을 기록했는데요. 영업이익은 인수 후 분기 실적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1분기 대비 10배 이상,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까이 확대된 수치입니다. 업계에서는 올 한해 하만의 영업이익이 2천억 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죠.
집단 소송 제기한 하만 주주들
그런데 최근 하만 주주들이 하만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주들은 삼성전자에 인수되기 전 배포 받은 경영 실적 전망 보고서가 회사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손쉬운 인수합병을 위해 회사의 하만의 가치를 일부러 낮게 측정했다는 것이죠. 법원은 하만 경영진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입니다.
물론 소송을 통해 하만 인수가 백지화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인수합병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은 법원의 중재나 일부 보상을 통해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죠. 인수가 진행되던 당시에도 몇몇 대주주와 소액 주주들의 소송 제기가 있었으나 형법 법원의 중재로 취하된 바 있는데요. 이번 소송은 어떻게 마무리될지, 또 삼성과 하만의 시너지는 이후 커넥티드 카 시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