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재계 3위를 차지하던 LG그룹이 SK그룹에 역전당해 4위로 하락했습니다. 맹추격하던 SK와 격차를 벌리지 못한 결과였는데요.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LG는 4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두 그룹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어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죠. 그렇다면 LG그룹이 SK그룹에 계속 밀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LG, GS와 분리되면서 재계 순위 하락
LG그룹의 시작은 1947년 1월 설립된 락희화학공업이었습니다. 창업자는 고(故) 구인회 회장인데요. 구 회장은 사돈이자 진주의 만석꾼 거부였던 허만정 씨와 동업을 시작했죠. 허만정 씨가 창업 자금을 대고, 그의 아들 허준구가 영업이사로 참여하면서 락희화학공업이 출범했죠. 이때부터 구 씨와 허 씨의 두 가문의 동업이 시작됐는데요. 이들은 LG그룹을 국내 재계 순위 2위 자리로 이끌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LG그룹은 전자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설립된 것은 1958년으로, 1965년에 설립된 삼성전자보다 7년 빨랐습니다. 금성사는 대한민국 최초로 선풍기와 냉장고, 텔레비전, 에어컨 등을 생산했는데요. 1979년 11월에는 국내 최초의 반도체 생산 회사인 금성반도체를 설립하기도 했죠.
198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의 재계 순위는 삼성과 현대, LG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LG와 GS의 계열 분리로 재계 순위에서 하락하게 됐는데요. 자산규모 63조의 GS가 빠져나가면서 순위 하락을 면치 못했죠. 현재 LG는 삼성, 현대차, SK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LG 하이닉스, SK 효자 되다
LG와 SK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LG가 소유했던 하이닉스와 실트론이 SK로 간판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고 있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SK그룹은 지난해 자산총액 200조 원을 돌파, 225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재계 2위 그룹인 현대차 그룹(234조 원) 격차를 7조 원 대로 좁혔죠. 하지만 LG그룹(137조 원)과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자산은 2015년 25조 원 수준에 머물렀는데요. 2016년 28조, 2017년 31조, 2018년 44조 원으로 늘더니 2019년에는 61조 원까지 증가했죠. 최태원 SK 회장은 하이닉스를 인수, 파격적인 지원과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나갔죠. 이렇게 SK그룹 품에 안긴 하이닉스는 자산 증가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경우 LG의 아픈 손가락이기도 합니다. 과거 IMF 사태 이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대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사업 교환과 빅딜을 압박했는데요. 그 결과 1999년 현대전자가 LG 반도체를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정몽헌 회장이 이끌던 현대그룹이 경영난에 봉착하자 2001년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했는데요. 이후 2011년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여기에 2017년 SK가 LG에게 인수한 실트론의 실적도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SK실트론 영업이익은 4,000억 원에 달할 전망인데요. 사실 SK그룹이 LG실트론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기업가치를 낮게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LG실트론은 2013년, 2014년 각각 179억 원, 248억 원의 영업손실을 낼 정도로 적자에 허덕였는데요. 2015년에 겨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흑자폭은 54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최태원 SK 회장이 1조 원 넘는 자금을 들여 사들인 실트론은 SK의 이름을 달자마자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상승하기 시작했죠. 이처럼 LG에서 부진한 실적을 보였던 계열사들이 SK의 품에 안기면서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죠.
문제는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그룹은 좀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뒤 '뉴 LG'를 기대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LG의 9개 상장사 중 7곳이 영업이익이 줄거나 적자전환했습니다. 특히 LG화학은 에너지 저장 장치 화재 여파로, LG디스플레이는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두 회사에서만 영업이익이 각각 1조 원 이상 줄었죠.
이 가운데 LG전자가 유일하게 2조 원 대를 기록했습니다.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의 54.6%에 해당하는데요. LG전자에서 약 70%의 영업이익은 가전사업이 담당했죠.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건조기,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등 건강과 위생 관련 제품들을 찾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매출로 이어졌습니다. LG전자에 이어 LG생활건강, LG화학, LG유플러스 등이 5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는데요. LG화학의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밑돈 것은 2007년 이후 12년 만의 일입니다.
LG그룹의 수익성 악화는 LG화학과 LG디스플레이의 영업이익이 1조 원 이상 감소한 영향이 컸습니다. 전체 영업이익 감소액에서 두 곳이 차지하는 비중은 98%에 달하는 만큼 타격은 더 컸죠. 여기에 지난 19일 충남 서산시 LG화학 대산 공장과 인도 남부의 LG 폴리머스 인디아 공장에서 잇달아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LG그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LG의 희망은 하반기
LG가 잇따른 실적 부진과 화재 사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LG 계열사 대부분이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를 훌쩍 넘어선 깜짝 실적을 냈기 때문인데요.
LG는 주요 계열사 가운데 LG디스플레이를 제외한 6개 계열사(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LG이노텍· LG상사) 계열사가 컨센서스를 웃도는 1·4분기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LG전자의 영업이익은 컨센서스보다 28.7% 많은 1조 904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년 만에 '1조 클럽'(분기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의 복귀죠.
이 가운데 LG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7.4%인데요. 1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입니다. 특히 생활가전 부분 실적이 미국의 월풀을 넘어서며 세계 최고 가전업체로 다시 한번 올라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