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 입은 교복 기억하시나요? 수십만 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것으로 악명 높았죠.
여름은 그렇다 해도 겨울은 보온이 하나도 되지 않아 원성이 높았습니다. 교복 재킷으론 겨울 칼바람을 막기 역부족이었죠. 외투가 허락되지 않았던 만큼, 많은 학생들은 속에 후드를 받쳐 입어 추위를 달래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후드 교복이 90년대부터 유행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지금보다 더 교복 규정이 철저했던 90년대, 종아리 맞으면서도 학생들이 후드티를 입은 데에는 '이 사람'의 영향이 컸습니다. 백댄서 출신으로 코요테 김종민과 쌍벽을 이뤘던 그는 어느 순간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도 못 한 그의 근황을 알아봅니다.
90년대 하이틴 스타
성형도 없던 90년대, 타고난 상큼함으로 무대를 좌우한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90년대 하이틴 스타 최창민입니다. 그는 90년대 말, 타고난 상큼함으로 많은 여성 팬의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고운 그의 외모와 달리 유년 시절은 쉽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빚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누나가 아파 어린 나이부터 분뇨 지게, 장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어야 했죠. 연예계 활동하게 된 계기도 빚을 갚기 위함이었습니다.
첫 시작은 1997년입니다. 그는 터보의 백댄서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코요테의 김종민과 함께 미남 백댄서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인회에서 터보가 최창민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죠. 이후 그는 1020을 타깃으로 한 패션잡지 모델로 활약하는데요. 큰 인기를 얻어 1998년 SBS 시트콤 '나 어때'에 출연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트콤으로 그는 그해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죠.
연기대상을 받기 전, 그는 가수로도 활동에 나섰습니다. 첫 앨범으로 '영웅'을 발매해 단박에 1위 후보에 올랐죠. 후속곡으로 낸 '짱'도 10대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노래로 이전까지 최고를 뜻하던 '캡'은 사양길에 오르고 현재까지 '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죠. 하지만 최창민은 1위를 하지 못했습니다. 늘 SES, 젝스키스 같은 그룹에 밀려 2~3위에 머물렀죠.
학생 패션을 선도하다
하이틴 스타였던 만큼 그는 10대 패션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복입니다. 최창민은 1집 '영웅'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교복 안에 후드티를 받쳐 입고 등장하는데요. 이 패션이 학생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이죠. 정착 최창민은 이후 후드 교복에 대해 "추워서 입었던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이 여파로 최창민은 교복 브랜드 '스마트' 모델이 돼 송혜교와 CF를 찍었습니다.
'영웅'의 후속곡 '짱'에서도 최창민은 남다른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짱' 활동 당시 최창민은 니삭스에 머리띠라는 다소 앞서나간 옷차림으로 등장합니다. 많은 이들이 괴랄하다고 평가했죠. 그러나 최창민의 '짱' 활동이 끝나갈 무렵, 머리띠 패션이 유행하게 됩니다. 연예계부터 길거리까지 다양한 곳에서 머리띠를 한 남자를 찾아볼 수 있었죠. 다만 니삭스 패션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믿음, 밤업소, 몰락
이후 최창민은 2000년, 3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별다른 활동 없이 연예계에서 사라졌죠.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에 팬들은 당혹스러워했는데요. 2007년 최창민은 tvN을 통해 소속사 사기당한 소식을 알렸습니다. 최창민은 재킷 촬영차 일본에 다녀온 직후 자신을 맡은 실장이 그의 전 재산을 들고 도망갔다 밝혔습니다.
그의 실장은 97년, 한창 소속사의 러브콜이 이어지던 때 최창민이 직접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소탈하게 버스 타고 와 햄버거를 사주던 게 오히려 믿음이 갔다고 밝혔죠. 그러나 최창민의 믿음과 달리 실장은 그를 조폭 기획사에 이중계약으로 넘겼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빚까지 떠넘겼습니다. 기획사에 끌려간 최창민은 밤무대에 설 것을 강요받아야 했죠.
수차례 위협이 이어졌지만, 최창민은 끝끝내 밤무대를 거절했습니다. 결국 소속사 사장 지인 가게에서 팬미팅 여는 것으로 계약이 마무리됐죠. 이후 최창민은 빚을 갚기 위해 건설 노동직에 나섭니다. 고된 나날이 1년 8개월이나 지속됐죠. 당시 그는 약간의 편집증까지 겪었는데요. 은행도 믿지 못해 번 돈을 매번 책상 서랍에 숨겨둘 정도였습니다.
명리학에 빠지다
막노동을 하며 최창민은 오히려 마음을 치료받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인간미를 느낀 것이죠. 그러다 흔히 사주팔자라 하는 명리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명리학을 배우려면 고가의 수업료를 내야 했는데요. 최창민은 지하철 택배 일을 추가로 해 돈을 모았습니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최창민의 자신의 이름을 최제우로 바꾸기까지 했죠.
개명까지 한 최제우를 걱정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특히 절친이던 모델 김승현은 '너무 무속인의 길을 간다'라며 그의 공부를 뜯어말렸습니다. 서로 욕설까지 주고받으며 대판 싸웠죠. 그러나 최제우는 끝끝내 명리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리학을 통해 10년 만에 방송 출연 기회를 잡았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최제우는 외려 명리학으로 자신에게 다시 연예계 활동 기회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죠.
고정 프로그램도 생겼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최제우는 명리학 전문가로 다양한 사람의 사주를 풀어주었는데요. 전현무에게 도화살이 있다 말한 지 한 달 만에 전현무가 이혜성 전 KBS 아나운서와의 열애를 인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 언론사 사주 코너를 맡아 칼럼을 쓰고 있죠. 2020년 2월에는 영화배우로도 잠시 찾아왔었는데요. 아쉽게도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인지도를 높이진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