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가뜩이나 어려웠던 고용시장을 한층 더 얼어붙어 취준생들의 시름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는데요.
이러한 와중, 기업들이 ‘사람이 안 구해져 걱정’이라며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직종이 있다고 합니다.
취준생들에게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마저 해당 직군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비상등이 켜졌다고 하는데요.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직업이 아닌,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직업임에도 최근 들어 기업들이 서로 모셔가려고 전쟁을 벌이는 이 직군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직군의 몸값을 오르게 한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지방에 자리 잡은 한 자원개발분야 공기업은 회계사 모집공고를 낸 지가 어언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어 채용공고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회계법인은 업무가 몰리는 기말감사 기간에 단기로 근무할 파트타임 회계사를 모집한 끝에 70대 은퇴자를 고용했는데요. 지난 2017년 신외부감사법 도입으로 감독 규정이 강화되고,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회계법인 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계사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회계사 확보에 비상등이 켜진 곳은 대기업과 금융회사도 예외가 아닌데요. 국내 최대 공기업 한국전력도 최근 경력직 회계사 채용에 나섰지만 지원자가 1~2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견·중소회계법인의 경우 대기업과 4대 회계법인에 밀려 회계사 인력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호소하는데요.
부산에 위치한 중견 회계법인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들조차 재무팀에 회계사가 없어 회계자문을 외부에 의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라며 “회계법인도 감사 관련 업무량이 폭증해 업무량을 견디다 못한 회계사들이 금융권과 벤처캐피털 등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잦은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인력난은 자연스레 회계사들의 몸값 상승으로 이어졌는데요. 업계에 따르면,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형 법인 매니저 1년 차 회계사의 기본 연봉은 8천만 원대 초중반을 기록했으나, 현재는 확정 급여가 1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성과급을 포함한 각종 수당까지 더하면 대략 1억 2천만 원에서 1억 3천만 원까지 오르는데요.
실제로 국내 빅 4 회계법인으로 꼽히는 삼정·삼일·안진·한영은 앞다퉈 급여를 올리며 회계사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딜로이트안진은 이달 초 중간 성과급을 실적과 상관없이 지급하고, 기본급도 10~15%가량 인상한다고 밝혔는데요. 삼일회계법인도 기존 연간 성과급의 3분의 2를 월급에 포함하고 기말 성과급은 따로 두는 방식으로 월급을 인상했습니다. 삼성KPMG도 연봉 10% 인상을 내걸었는데요.
이외 삼덕·신한 회계법인 등 국내 중견법인에서도 경력직 채용공고에 ‘4대 법인과 동일한 연봉과 추가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법인은 업무가 없을 시 업무시간 내 자유롭게 자기 계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제시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중견 회계법인은 대형 법인에 비해 업무 강도가 다소 낮은 편이라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젊은 회계사들이 많이 옮기는 편이다”라고 전했습니다.
대형·중견 법인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회계사들의 연봉을 올려 인력 확보 전쟁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형 회계법인은 정규직 회계사는 고사하고 파트타임 회계사 확보로 눈을 돌렸는데요. 일부에선 학업·육아 등의 이유로 현장을 떠난 휴업 회계사를 비롯한 70·80대 은퇴 회계사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파트타임이라 하더라도 감사 기간 3~4개월의 단기 계약으로 사회 초년생 1년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3천만 원 안팎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1개월에 1천만 원 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파트타임잡인 것이죠.
업계에서는 신외부감사법 도입으로 표준 감사 시간제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회계사 인력난을 부추겼다고 입을 모으는데요. 예컨대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0 회계연도부터 상장기업 외부감사 업무를 맡으려면 사무소에 40명 이상의 공인 회계사를 보유하도록 못 박았습니다.
기존에는 자본금 5억을 넘고 공인회계사 10명을 고용하고 있다면 외부감사 업무를 맡을 수 있던 것을 감안할 때 순식간에 회계사 보유 조건이 4배로 늘어난 것인데요. 이에 중소형 회계법인은 인력 확보를 위해 합병을 단행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던 것이죠.
실제로 삼덕은 소속 회계사가 2018년 418명에서 올해 604명으로 200여 명 가까이 늘어났으며, 대주 회계법인은 같은 기간 소속 회계사가 130여 명 늘어났는데요. 합병으로 규모를 키운 성현과 서현 역시 매년 20명 이상의 신입을 뽑는 등 신외부감사법 도입 이후 3년 새 규모를 2배 이상 키웠습니다.
이외 표준 감사 시간제는 기업 업종과 규모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을 감사에 투입하도록 강제해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성격을 띤 제도인데요. 기업 규모 5조~10조 원인 제조업 기업은 기본 3770시간으로 자회사 숫자, 상장 여부 등 세부 요건을 고려해 감사 시간이 추가로 정해지는 식입니다.
이처럼 감사에 투입해야 할 시간은 많아진 데 비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회계사 한 명당 근로시간이 제한됨에 따라 회계사 인원을 늘릴 수밖에 없던 것이죠.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2018년 126명의 회계사가 투입됐으나 올해 175명의 회계사가 동원됐으며, SK하이닉스의 경우 외부감사인원이 같은 기간 50여 명 늘었습니다.
한편, 회계사가 인력난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단 소식이 알려지자 대학가에선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균관대 고시반 ‘양현관’은 매년 200여 명의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생들을 선발하는데요. 성균관대뿐만 아니라 각 대학 고시반은 별도의 선발 시험을 치러 철저히 성적에 따라 시험 준비반을 편성한다고 합니다.
일부 시험 준비생들은 인터넷 강의를 듣는 시간대를 오전, 오후 등으로 나눠 수강료를 절약하고 있기도 한데요. 회계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라는 대학생 정모 씨는 “회계사 자격증은 공기업, 세무직 공무원 등 다른 시험 준비 과목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플랜 B를 세우기도 용이한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대기업, 금융회사 너나없이 고액 스카우트 경쟁을 벌일 정도인 회계사 품귀현상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코로나19 이후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불이 붙은 이상 인수합병 관련 자문 업무 등으로 향후 회계사를 향한 기업들의 러브콜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점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