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이후 고용 불안정성이 한층 심화된 요즘, 노후대비를 위해 혹은 스펙 상승을 위해 자격증 취득 열풍이 전 세대를 막론하고 불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취득하기만 하면 일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자격증이 있습니다. 다만, 매우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터라 일부 기업에서는 자격증 취득을 원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합숙교육을 지원하기도 한다는데요. 한때 미국에서는 최고의 직업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이 직업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당장 합격 정원을 2배 이상 늘려도 전부 취업 걱정은 없을 것” 한 현직 보험계리사는 이 같은 말을 했는데요. 2019년 기준 현업에서 활동하는 보험계리사는 1300여 명에 달하는데요. 그런데 업계 추산에 따르면 향후 보험 시장 트렌드 및 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으로 이 숫자가 3000명까지는 늘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요는 폭증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보험계리사는 과연 어떤 업무를 도맡고 있을까요?
올해 9월 생명보험 브랜드 평판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한화생명은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험계리사란 어떤 직업인지에 대해 다룬 적 있는데요. 한화생명 상품개발팀에 소속된 보험계리사 신상문 사원의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일상을 영상에서 공개했습니다.
신 사원은 평소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일찍 63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 도장을 찍었는데요. 그가 일찍 출근한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 계리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함에서였습니다. 한 시간가량 집중해서 시험 준비를 끝낸 그는 본격적인 업무에 나섰는데요.
오전 근무 시간에 보험약관을 작성하는 일에 몰두했던 신 사원은 점심을 먹은 뒤 얼마 전 계리사 시험에 통과한 후배 두 명과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보험계리사 시험은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합격하기 어려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신 사원의 후배들은 현재 한화생명에서 운영 중인 ‘Job-off’과정의 도움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해당 제도는 한화생명에서 자사 직원들의 보험계리사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기 위해 연수원에서 4주간의 합숙과정을 운영하는 것인데요.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격증 준비에만 골몰할 수 있단 점에서 내부 직원들의 호응이 높다고 하죠.
보험계리사는 고도의 통계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적정 보험료를 계산해 보험상품을 만들고 위험률을 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일을 하는데요. 현재 보험계리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 반해 공급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보험계리사 모시기에 혈안이 된 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보험계리사의 몸값이 높아진 이유는 내년부터 새롭게 도입될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때문인데요. IFRS17 도입 시 보험사 부채가 원가 평가에서 시가평가로 바뀌기에 보험사들은 이에 따른 보험금, 보험료, 책임준비금 등을 새롭게 각각 산출해야 합니다. 즉 업무 작업이 보다 복잡해질 전망이라 보험계리사 확충이 필요한 것인데요.
한 대형 보험사 소속 계리사는 “IFRS17은 기존 작업 보다 훨씬 요구되는 지식수준이 높다”라며 “IFRS17을 준비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입 이후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전 과정에서 회계사의 손길이 안 필요한 데가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제도 도입 외에도 보험사들이 더 많은 계리사가 필요해진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새로운 보험 상품 개발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보험계리사는 통계 자료 등을 참고해 향후 어떤 보험 상품이 시장성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대비하고, 수지를 맞추기 위해선 얼마의 보험료를 책정해야 하는지 등을 계산하는데요. 예컨대 고령화 관련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치매보험, 간병비 지원 보험 등을 개발하는 식입니다. 이때 계리사가 많을수록 다양한 분야의 통계를 들여다보고 더 많은 상품을 기획할 수 있는 것이 당연지사인데요.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계리사가 적은 회사에서는 빠르게 변화는 트렌드를 겨냥한 보험상품을 적시에 내놓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라고 밝혔습니다. 즉 상품 경쟁력이 보험계리사 숫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험업계에서는 계리사 모시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한화생명은 자사 직원이 보험계리사 시험에 응시할 경우 4주간 업무에서 벗어나 오롯이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연수 제도를 운용 중에 있는데요.
현대해상의 경우 계리사 1차 합격자를 채용해 2차 시험이 다가오면 약 2주간 회사 연수원에서 합숙하며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도맡고 있습니다. 이때 교육비, 시험 응시료, 교재비까지 지원하는데요. 그럼에도 매년 계리사 시험 지원자 수는 약 1천 명에 달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연 140명 안팎에 불과해 당장 계리사 채용을 확대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IFRS17 도입을 앞두고 계리사 채용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험업계를 감안해 지난해부턴 금융당국이 계리사 시험의 문턱을 낮춰둔 상황인데요. 계리사 인력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1차 시험 면제가 가능한 경력 인정기관을 확대하고, 2차 시험 과목별 합격 점수 인정 기간을 늘렸습니다.
한편,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직업정보 포털사이트 워크넷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보험계리사 연봉은 평균 6651만 원이며, 상위 25%는 8458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때 각 보험사마다 금액은 다르나, 계리사 자격증 보유자의 연봉에는 ‘계리사 수당’도 포함되기에 비슷한 연차의 직원보다 연봉이 높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코로나19에도 끄떡없는 수요를 자랑하는 보험계리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금융당국에서 시험 난이도를 조정한 만큼 각 보험회사가 IFRS17의 시행 전까지 충분한 보험계리사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