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또박또박 들어오던 월급이라는 고정급 여가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이럴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입돼 있는 국민연금일 것입니다.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은 대다수 국민의 미래의 ‘밥줄’과도 직결되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이 쏠려있는데요. 코로나19이후 주식 상승장에 힘입어 그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왔던 국민연금이 최근 뼈아픈 실책을 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이 우려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로서 많은 이들의 노후를 둘러메고 있는 국민연금이 어떤 위기를 맞닥뜨린 것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우리의 노후 자금으로 불리는 국민연금의 운용자산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900조 원을 돌파했는데요. 이는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33년 만에 달성한 수치로 내년에는 전 세계에서 투자 큰손으로 꼽히는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세 번째로 ‘1000조 클럽’에 가입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나온 상황입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600조 원대를 운용했던 국민연금이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서도 지난해 9.70%, 올해 7월 말 기준 8.55%라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던 비결은 코로나19 이후 동학 개미 열풍을 타고 주식시장으로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요.
이처럼 최근 들어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인 국민연금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채무 불이행으로 파산 위기에 놓인 그룹에 이제껏 410억 원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난 것인데요.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국민연금 기금 운용본부는 2016년 26억 원, 2017년 123억 원, 2019년 87억 원, 지난해에는 60억 원을 헝다그룹에 투자했습니다. 올해 투자 잔액은 지난달 9월 기준 약 8억 원에 달하는데요. 여당 소속 한 의원은 헝다그룹 투자로 인해 올해 들어 42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헝다그룹 사태가 주택 담보 투자로 수익을 내던 리먼 브라더스가 과도한 차입금 및 집값 하락으로 파산해 전 세계 금융시장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친 일명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데요. 다만, 이달 들어 계열사 지분 매각을 연유로 헝다그룹에 대한 주식 거래 조치가 이뤄지고 있어 향후 국민연금의 투자액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은 문제점을 꼽힙니다.
이와 관련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국 부동산 업종 침체가 중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향후 국민연금은 헝다그룹을 비롯해 중국 정부의 대응을 면밀히 주시하고 필요하다면 위탁 운용사에 전액 매도를 지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처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는데요.
국민연금에게 닥친 악재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민연금이 여당의 한 소속 의원에게 제출해 지난 5일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에 3880억 원을 투자함으로써 예상되는 손실액은 현재로서 427억 원에 달하는데요.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약 3년간 3880억 원을 투자해왔으며 이후 해당 사업체에 ‘분식회계 사태’가 터지면서 투자금 회수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당시 부실공사로 인해 3조 원가량의 손실을 입었으며 이와 관련한 분식회계 이슈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바 있는데요. 이후 검찰 조사로 임직원 횡령, 회계 처리 위반 등이 밝혀지면서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15년 당시 명실공히 세계 1위를 지켰던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수주금액 국내 1위를 달성하기도 했던 기업이 한순간에 상장폐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인데요.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채권단 출자전환, 영구채 발행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정상화 작업에 힘을 쏟았고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보유 채권의 50%는 만기 연장을 신청했으며, 나머지 50%의 채권은 주식으로 전환해 매도했는데요.
이때 주식 매도액은 1074억 원으로 여기에서만 86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요. 재판 과정을 들여다보자면, 1심 법원은 대우조선해양 및 임원 2인에게 413억 8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여당 소속 한 의원은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관련 투자로 큰 손실을 낸 것과 관련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큰 손실을 낸 것은 문제”라며 “다른 회사채 투자에 대해서도 리스크 관리와 점검을 긴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는데요. 이에 국민연금은 “현재 소송 진행 중이기에 판결에 따라 회수 금액이 차후 변동될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900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며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지분을 모조리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요? 국민연금은 국민이 납부하는 국민연금보험료를 집단으로 운용해 그 수익금을 다시 국민에게 연금으로 돌려주는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인데요.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1%만 높아져도 보험료율이 2.5%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고, 연금 고갈 시점을 무려 8년 가까이 늦출 수 있어 기금 운용을 잘하는 것은 국민의 미래 삶 안정화와 크게 직결돼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 지배 구조의 최상위에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있는데요. 해당 위원회에서 기금 운용에 관한 최종 의견사 결정을 도맡습니다. 이외 운영 실무는 국민연금공단에서 하고 있는데요. 이때 공단의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투자는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현재 국민연금은 주식, 부동산, 채권 등 자산별로 수익률과 위험도가 각기 다르고, 또 국내냐 해외냐에 따라 차이가 있기에 이를 모두 적절히 섞어 운용하고 있는데요. 올해 공개된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는 국내 채권 37.9%, 국내 주식 16.8%, 대체투자 13.2%, 해외 주식 25.1%, 해외채권이 7% 정도입니다.
한편, 국민연금의 운용과 관련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요. 바로 국민연금이 공무원 조직의 한계로 꼽히는 책임성 부재 등 경쟁자 없는 조직의 한계를 고스란히 띄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해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회를 일종의 작은 국회로 볼 수 있는데 위원회가 투표로 굴러간다고 한들 금융시장 경험이 적은 위원들이 제대로 알리 만무하다”라며 “복지부 장관이 주식 구조에 대해 얼마나 이해도가 높을지도 의문이다”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기금운용위원회 인원 구성을 보면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고, 이외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차관 등 5명의 정부위원이 당연직으로 운용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14인으로 구성된 위촉위원 가운데 투자와 관련된 전문가는 2명뿐이라 위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됩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제기된 지 오래이기에 국민연금 기금 운용체계 전반에 대한 개정안은 무려 2003년부터 국회에 수차례 제출됐지만 지금껏 국회를 통과한 적은 없는데요. 업계 전문가들은 집권당이 의사결정을 하는 한 국민연금 운용 체계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진척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죠.
하지만 최근 들어선 동학개미로 일컬어지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남에 따라 연기금 운용 문제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되면서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단 점에선 희망도 보입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 앞에 닥친 우려스러운 상황과 해당 기관의 운영구조 전반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관료화됐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는 국민연금이 향후 혁신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